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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과 며느리 고종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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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의 5대손이며 문정왕후 손자 선조

선조의 손자인 인조 그리고 역적 세조 수양의

핏줄은 흥선대원군과 고종, 마지막 황제 순종까지 이어졌다.

잘못된 정통성으로 조선은 신하들에게 휘둘리고

권신과 외척이 득세하고 민란은 끝이질 않았다.


1964년 대원이대감이 섭정을 하며 조선은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그는 실정만을 거듭한다.

고종 즉위 직후 경복궁 중건을 한다.

지금이야 별거 아닐수 있지만 가난한 조선엔 국책사업이었다.

경제 관념이 떨어졌던 대원군은 당백전을 발행했다.

화폐를 담보하는 금은이 없음에도 무조건 화폐만 찍은 꼴이다.

상공업과 무역을 장려하여 나라를 부강시키고 신식 무기를

도입, 제작하여 다른나라들이 제국을 만든 시절 흥선은 

이씨 조선 부활이나 내세우고 서양 문물과 천주교를 박해하고

조선 초기 시절로 회귀했다.

교과서로 배운 경복궁 중건이 업적이라니 어이가 없다.

궁궐 중건은 나라가 부강해진 다음 하는거다.


장동(안동) 김씨 세도에 이은 민비의 사치와 민씨

외척의 발호는 조선 멸망의 단초가 되었다.

군인 녹봉은 안주고 과거 등용은 부패했고

아버지와 마누라 싸움에 고종은 등신되고

신하들은 친중이든 친일이든 친러이든 

각자도생 살길을 찾아 나선다.


나는 명성황후란 존재에 부정적이다.

김건희 이상으로 사치스럽고 탐욕스러웠으며

사돈에 8촌까지 긇어모아 권력을 유지한 사람이다.

드라마이든 뮤지칼 명성황후든 모른척 할뿐이지

솔직히  침을 뱉고 싶다.

실제 당시 백성들의 민비 평가는 그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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