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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양과 인근 변두리


조선 수도 한양은 4대문이 경계였다.

북문은 지금 종로구 일부 혜화동까지이고

서대문구가 상당 부분 포함된다.

지금 성북구는 도성의 북쪽과 만나는 지점이다.

그래서 성의 북녘이라 하여 성북이다.

 

동문은 동대문이라 생각하면 된다.

지금의 신설동 조금전, 그리고 장충동 근처까지라 생각된다.

가장 큰 문은 중국 사신이 드나들던 남문 숭례문으로

용산 이전이라 생각하면 되고 서문은 지금 연세대학 종전이다. 


지금 신당동만 해도 도성이 아니었고 용산도 더더욱 아니었다.

신당동은 신당리라 했고 무당과 신당이 많은 곳이라 지어진 이름이다.

제기동도 도성 밖이었고 왕실 제사와 선농단에 유래한다.

한방 약령시와 경동시장 등 제사 약재. 제사 음식 시장 발달 유래이다.

 

당시도 4대문 안에 사는지 지금처럼 강남에 사는지가 집구석 위상이었다.

다음 편에 또다른 동네 유래를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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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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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으로만든두부

니가 말하고 싶은 우리 역사는 뭐냐? 일본 왜놈들이 니 역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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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으로만든두부

썩어빠진 한국역사? 니 조상은 자랑스러운 왜놈이냐? 니 주장의 썩어빠진 한국인이 조상은 아니라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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