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시선] ‘우선 고려’라는 말장난, 누더기로 변한 통합 특별법, 민주당의 배반인가 농락인가
‘정청래와 주류 정치권’은 껍데기만 남은 기만극 앞에 당당히 답하라
역사는 때로 잔인하리만큼 명징한 기록을 요구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의 거리를 붉게 물들였던 그 처절한 항쟁의 서막을 복기하는 일은 단순히 빛바랜 달력을 들추는 행위가 아닐것이다. 거대한 권력의 폭력 앞에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짓밟혔으며, 동시에 어떻게 가장 찬란하게 피어났는지를 증언하는 고결한 기록이다.
1997년 대법원은 이 저항을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수호를 위하여 결집을 이룬 것’이라 명징하게 새겼다. 이로써 광주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심장이자 국가가 공인한 정의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러나 찬란한 법적 명예의 이면에서, 오늘날 ‘진짜 광주’의 삶은 형편없이 도륙당하고 있다. 피의 학살이 끝난 자리에 찾아온 것은 더욱 잔인한 영혼의 사육(飼育)이었다. 온라인에서는 극우 세력의 ‘디지털 단두대’ 위에서 매일 밤 조롱당하고, 현실에서는 호남 주류 정치권의 철저한 ‘표 계산기’로 전락해 이용당해 왔다.
화려한 정치적 수사 뒤편에 가려진 통계청의 수치는 광주가 처한 고립의 깊이를 고스란히 증명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명목 지역내총생산(GRDP)은 전국 17개 시·도 중 14~15위권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쥐고 있다. 대한민국 전체 경제 규모(GDP)에서 광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단 2% 수준에 불과하며, 1인당 GRDP는 매년 최하위를 다툰다. 인근 전남이 제조업 기반을 바탕으로 풍요를 누리는 것과 비교하면 더욱 참담하다 할것이다.
이 몰락의 기저에는 도시를 지배해 온 지독한 ‘이념적 폐쇄성’과 왜곡된 산업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광주는 오랫동안 외지 자본과 민간 투자를 ‘지역 상권을 외면하는 악덕 자본’으로 취급하며 밀어냈다. 대형 복합쇼핑몰 하나 들어서는 과정조차 수십 년간 정쟁의 희생양이 되어 지체되었다.
시민들이 문화적·경제적 혜택을 누릴 권리는 ‘소상공인 보호’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저당 잡혔고, 고부가가치 미래 제조업이 실종된 자리에 생산성이 낮은 영세 서비스업만 과밀화되었다. 그 결과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대거 고향을 떠나는 자멸의 가속도가 붙었다.
이 참담한 경제적 파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지난 수십 년간 광주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성벽 삼아 권력을 독점해 온 호남의 주류 정치권이다. 그들은 선거철만 되면 망월동 묘역에서 고개를 숙이며 감정에 호소했고, 시민들은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절망감 속에 기꺼이 표를 몰아주었다. 경쟁이 완전히 사라진 호남 정치판은 고인 물처럼 썩어 들어갔고, 정치인들은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려는 최소한의 절박함조차 잃어버렸다.
무조건적인 표만 던져주는 순종적인 ‘정치적 화수분’으로 광주를 사육해 온 결과가 바로 오늘의 최하위 경제 성적표다.
이제 이 고립된 도시에게 아예 숨통을 끊어버릴 마지막 칼날이 들이닥쳤다. 바로 호남 주류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출범이다.
지방 소멸에 대응하는 메가시티 구축이라는 거창하고 장밋빛 가득한 슬로건 뒤에서 의혹의 설계자들은 축배를 들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 뒤편을 예리하게 파고들면, 그곳에는 가장 처절하게 지워져 가고 있는 한 도시의 역사와 영혼이 보인다. 그것은 바로 민중항쟁의 위대한 성지, ‘광주’의 인위적인 삭제 의혹이다.
이번 행정통합 특별법안에 명시된 공식 약칭은 ‘광주특별시’다. 언뜻 보면 광주의 이름을 보존해 준 것 같지만 실상은 잔인하다. 1980년 오월의 피로 쟁취해 냈고, 1986년 직할시를 거쳐 1995년 굳건히 자리 잡았던 독립적 지방정부로서의 ‘광주광역시’는 법적으로 완전히 해체되어 소멸한다. 거대한 메가시티의 한 권역으로 쪼개져 흡수되는 것이다.
왜 그들은 굳이 이 시점에 광주라는 독자적인 행정 단위를 없애려 하는가. 부당한 국가 권력에 맞서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독보적인 ‘항쟁의 아이콘’ 광주, 그 다루기 힘들었던 저항의 심장을 행정적으로 거세하려는 교묘한 의도가 숨어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광주의 상징성이 거대한 광역 행정 구역의 덩치 속에 섞여 흐려질 때, 광주는 자연스럽게 역사 속의 한 페이지로 박제되어 힘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국회 심사 과정을 진두지휘한 더불어민주당 수뇌부, 특히 법사위와 당의 핵심에서 이 법안을 다룬 정청래 의원을 비롯한 지도부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맹목적 지지를 보낸 호남에 대한 배반인가, 아니면 처절한 농락인가.
당초 통합특별시를 추진하며 호남 정치권이 시민들에게 약속했던 장밋빛 청사진은 화려했다. 정부 재정 지원 의무화, 강력한 재정분권, 대형 SOC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등 "4년간 20조원 지원"이라는 수사로 시민들의 눈을 가렸다. 그러나 국회 문턱을 넘어선 최종 성적표는 처참한 기만극에 가까웠다.
국세 지방 이양 등 강력한 재정분권의 내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예타 면제 조항은 통째로 삭제되었다. 공공기관 이전 시 확실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던 특례는 그저 정책적으로 '우선 고려'해 보겠다는 말장난 수준으로 완화되었다.
가장 치명적인 기만은 정부 재정 지원 조항의 변개(變改)다. 법률상 국가의 의무를 명시한 "지원해야 한다"라는 강제 규정은, 주면 좋고 안 줘도 그만인 "지원할 수 있다"라는 임의 규정으로 교묘하게 바뀌었다. 이 모호한 한 단어의 차이로 인해, 통합특별시는 해마다 중앙정부의 가랑이 사이를 기며 예산을 구걸해야 하는 철저한 ‘재정 종속’의 노예가 되었다.
겉으로는 호남을 위하는 척 축배를 들었지만, 정작 법안을 만들 때는 관료들의 논리에 밀려 광주의 생명줄을 내팽개쳤다. 표가 필요할 때는 오월의 묘역에서 눈물을 흘리던 이들이 지역의 미래를 담보할 실질적 권한은 단 한 조각도 지켜내지 못한 이 사태를 배반과 농락 외에 무슨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호남은 똑똑히 보아야 한다. 메가시티라는 장밋빛 환상극의 막이 오르는 순간, 도청 앞 분수대에서 피 흘리며 민주주의를 외쳤던 광주의 영혼은 거대한 행정 통합의 용광로 속에서 녹아내리고 있다. 저항의 야성은 메가시티라는 행정 논리로 거세당하고, 지역 주민들은 청사 위치를 어디로 둘 것인가를 두고 권역별 갈등이라는 얄팍한 이기주의 싸움판으로 내몰렸다. 권력자들이 의도한 대로 정확히 분열당하고 있는 꼴이다.
이제 광주는 잔인한 정치적 가스라이팅에서 깨어나야 한다. 대법원이 공인한 ‘헌법수호의 심장’이라는 명예가 오늘날 길거리에서 일자리가 없어 한숨 짓는 청년들의 배를 채워주지 못하며, 꼴찌를 기어 다니는 GRDP를 올려주지 않는다.
오월의 정신을 진정으로 계승하는 것은 과거의 슬픔에 갇혀 문을 걸어 잠그는 폐쇄성이 아니다. 가장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도시로 거듭나 우리의 자식들이 고향을 떠나지 않고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다.
행정 구역의 경계는 지워질지언정, 권력의 심장을 찌르던 광주의 송곳 같은 비판 정신까지 지워지게 둘 수는 없다. 당시 군부에 의해 외딴섬에서 학살당하면서도 끝내 존엄을 지켰던 광주다.
호남은 이제 정치권을 향해 "우리를 더 이상 이용하지 말라"고, "우리의 삶과 경제를 돌려달라"고 준엄한 심판의 채찍을 들어야 할때가 온것이다.
그것만이 고립되고 폐쇄적인 ‘2%의 늪’에서 벗어나, 위대한 주권자의 도시 광주를 진짜 회복시키는 마지막 방화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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