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글을 쓰며 정리를 한다.
5년의 정리 같은 것이다. 카톨릭신자인 나는 5년 초기 시기 성당에 열심히 다녔다.
그리고 정의를 믿고 의지 하였으며 신부와 신도를 자주만났다. 똑같다.
신용정보의 따라다기와 소음발생으로 청각과민으로 인한 공격적 성향을 신앙의 힘으로 견딜수 있었는 것같다.
그런데 중요한 포인트 내가 아파하는 것 보다 이일에 참여한 사람들은 나의 말보다 그들의 말을 듣길 원했고 그일에 (나의 주변을 맴도는 일에 참여하길 원했다) 참여자로 있길 원했다.
나의 주변을 길을 걸을때 과대망상에 빠져 정신병 거린 사람들이 말하고 생각케 할 일들이 서슴없이 발생하였고 또는 그일의 연속이 지속 되었다.소음과 압박이다.
결국 작은 소리에도 심징이 찢어지는 고통의 단계가 오자 나의 내적 공격성 둥달아 올라갔다.
경찰공무원으로 법질서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면 진작에 공격이 타인을 강타하였울 것이다.
신앙과 법질서 의식이 한몸이 되어 나를 지키게 하였다.
지금은 청각과민이 진정되었고 왜 그렇게 소음으로 상대를 궁지로 몰아 피해자로 스스로들을 착한 사람이나 피해자로 포장하는지도 알개 되었다.
공원에 가서 사람을 만나보면 첫 대면에서와 신용정보원과 접촉후에 나를 대하는 표정이 달라진다.
그냥 따라다녀라 시키면 또는 그장소에 가서 대기하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도촬을 밥먹듯이 하는 자들이 되었다.
이일이 얼마나 오래 되었으면 남녀노소에 구분이 불분명하다.
그런사람들이 그렇다고 추심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일에 전속되지도 않았는데 그런짖을 계속한다.
물론 지금은 그들의 시스템과 인적구성을 알기에 그런씩의 공동체 행동의 원인과 이유룰 어느정도 알수있다.
단순하기도 복잡하기도 하다.
나의 청각과민증 으로 그들을 공격하였다면 진작에 끝이 났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극복하였다.
자신들이 누구이고 인적구성과 시스템까지 알고 있다는 것 또한 서로 아는 일이 되었다.
이일의 비극은 모두 자신이 올바른 일울 하고 있다는 칙각을 사람들에게 프레임화 하였다는 것이다.
타인의 정보가 되어도 나의 일이 아니면 되고 상대가 나쁜넘이면 공격하기 더욱 좋다.
뉴스에 나오는 다이소갑질 영상들은 의도된 함정에 빠져 촬영당하였거나 평소 나쁜 매너에 조직적 공격을 받은것이다.
좁은 나라에 교통도 사통팔달로 가까워져 모두의 행동이 너무나 쉽게 노츨되고 체크 가능히게 되었다.
인트넷이 실시간으로 연결해주니 재미없는 드라마 보다 공용드라마와 풍문을 끝없이 듣는 구조가 가능해졌다. 조그마한 껀수로도 국민사형 투표의 변형을 만들어 활용가능하게 된것이다
이것이 신용정보와 보증 연예기획사가 이땅에 구축한 거믈망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오가작통법 같은 치밀한 그리고 촘촘한 작동이 그들만의 다른 세상을 만들고 진행시키는 공간이 되었다.
지하경제의 순환 원리이며 국가에대힌 국민의 의무외에 그세계에 포함된 자들이 가지고 가야하는 숙명이다.
신용이란 배경이 지하경제와 제도경제를 연결하고 그들에게 사람들의 협조를 너무나 쉽게 받도록 한것이다.
성당 교회 절 어디든 자신들에게 협조할 사람은 있고 방송 정치 경제계 에 협조할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다만 협조를 쉽게 받지 못하는 분야도 분명히 있다.
이들은 주로 사회주류보다 비주류에 많은 사람을 참여케하였고 주류충은 상대적으로 적은 임원이 참여하는 것이다.
왜 비주류층이 상대적으로 많으진것은 그들이야 말로 시간과 돈에 목말라있고 발로 움직여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돈이 아니어도 무엇엔가 목말라있는 사람들이다.
신용정보는 그냥 그 시스템의 중요한 기계와 같은 것이다.
개념을 정리하는ㅜ것도 조금은 힘들다..

담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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