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종합병원 등 일정 규모 이상의 의료기관은 일정 주기마다 병원 인증평가를 받아야 한다.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을 목표로 도입된 제도이며, 4년마다 인증을 갱신한다. 현재는 5주기 인증평가가 진행 중이다.
종합병원 기준으로만 약 500개에 달하는 세부 평가 항목이 존재하며 환자확인, 감염관리, 시설관리, 인사관리, 운영관리 등 다양한 분야를 평가한다. 이 정도면 상당히 촘촘한 관리 체계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인증평가를 준비해 본 의료기관 종사자라면 대부분 비슷한 의문을 갖게 된다.
“이 평가가 과연 환자를 위한 것인가.”
인증제도의 기본적인 목표는 의료소비자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제도라고하는데 양질의 의료서비스란 환자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진료를 받기까지의 대기시간
수술을 받기까지의 대기기간
입원을 위한 대기기간
검사와 수납 과정의 편의성
병원 내 이동 동선의 효율성
환자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은 대부분 이런 요소에서 결정된다. 그러나 현재의 인증평가 항목을 살펴보면 이러한 환자 중심 지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형 병원의 현실을 보면 이 문제는 더욱 뚜렷해진다. 진료 예약을 잡기 위해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일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특정 검사나 수술은 수개월 이상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환자 입장에서는 분명한 불편이고 의료 접근성의 문제다.
그런데도 이러한 병원들이 인증평가에서는 최고 등급을 받고 ‘우수 의료기관’으로 평가된다. 환자는 불편을 겪고 있지만 제도적으로는 가장 모범적인 병원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인증평가가 무엇을 평가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평가 항목의 상당수가 이미 다른 법률로 관리되고 있는 영역이라는 점이다. 시설 안전은 산업안전 관련 법령으로 관리되고 있고, 인사·노무 역시 근로기준법 등 다양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증평가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다시 병원 내부 규정으로 만들고 이를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결국 의료기관은 환자 서비스 개선보다 평가 항목을 충족시키기 위한 문서와 규정을 만드는 데 더 많은 행정력을 투입하게 된다. 현장에서는 이를 두고 ‘환자를 위한 평가가 아니라 서류를 위한 평가’라는 말까지 나온다.
인증평가를 통과하면 환자안전관리료 등 추가 수가를 받을 수 있다. 환자 안전 관리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환자 편의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항목과 서류와 규정을 중심으로 한 평가를 통과했다고 해서 추가 비용을 지급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구조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단순 추가 수가를 받기 위한 인증에 지나지 않는다.
병원은 본질적으로 환자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우리나라 의료법 역시 의료기관의 영리 활동을 제한하고 있으며, 의료기관은 결국 환자의 진료에 기반해 운영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병원 인증평가 역시 당연히 환자 중심의 평가 체계여야 한다.
외래 진료 대기시간은 얼마나 관리되고 있는지
수술과 입원 대기기간은 얼마나 합리적인지
검사와 수납 절차는 얼마나 효율적인지
병원 내 이동 동선은 환자에게 편리한지
진료 예약 접근성은 충분한지
이러한 항목들이 평가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의료서비스의 질 평가’라는 말은 공허한 수사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의 병원 인증평가는 분명 일정 부분 의료기관의 관리 체계를 정비하는 역할을 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환자가 체감하지 못하는 평가 제도는 결국 형식적인 제도로 밖에 생각이 들지 않을수 없다.


댓글 1
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는데, 의료기관 인증평가는 고객 만족도 조사가 아닙니다. 환자 대기시간 줄이는 등의 편의증진이 목적이 아니라 '의료기관의 표준화와 안전'이 진짜 목적이에요. 서비스가 좀 불편한 것과 환자가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안전 문제는 차원이 다른 영역입니다. 서류 작업 많다고 낭비라 보기도 힘든 게, 아무런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병원 시스템이 의료진 개인 역량에 따라 널뛰기를 하게 됩니다. 국가가 기준을 딱 정해놓고 강제하니까 그나마 전국의 종합병원들이 최소한의 안전망을 유지하는 거죠. 수가(보상) 문제도 반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돈이라도 쥐여줘야 병원이 행정력, 인력 써가면서 환자 안전에 투자하지, 돈 안 주면 비용 아끼려고 안전 투자부터 줄일 게 뻔합니다. 대기시간 문제는 우리나라 의료 전달 체계의 구조적인 한계지, 인증평가 제도를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