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부에서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장기를 제호에 박고 천황을 찬양했던 조중동의 친일 DNA를 구체적인 사료로 파묘하여 공유했습니다.
해방 후 단죄받아 사라졌어야 할 이 부끄러운 활자 카르텔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을 자양분 삼아 곧바로 새로운 독재 권력들의 품에 차례로 안겼습니다.
연재 2부에서는 이들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잔혹한 독재 정권 시절, 철저한 사료를 바탕으로 어떻게 번갈아 가며 나팔수 노릇을 자처했는지 그 추악한 대물림의 기록을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카르텔이 지난 세기 동안 목숨을 부지한 방식은 늘 같았습니다.
민족을 배신했던 그 더러운 펜대로 독재자를 신격화하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우리 국민을 짓밟는 몽둥이가 되어주는 대가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1. 이승만 정권기: 국민을 버린 거짓 보도와 헌법 파괴의 호위무사 (조선·동아의 합작)
권력에 아첨하는 습성은 해방 직후 이승만 정권의 탄생과 함께 본격화되었습니다. 참고로 이 시절 중앙일보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기에, 조선과 동아 두 언론사가 독재의 쌍두마차 노릇을 했습니다.
6·25 전쟁 한강 폭파 은폐와 대국민 사기극 (1950년 6월 27일~28일 자 지면):이승만 정권이 서둘러 한강다리를 폭파하고 자기들만 대전으로 도망칠 때,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우리 국군이 북한군을 격퇴하고 평양으로 진격 중이다", "의정부를 탈환했다"라는 전대미문의 매크로성 허위 보도를 쏟아냈습니다. 이 거짓 활자 때문에 수많은 서울 시민들은 피난 기회를 놓치고 고립되었으며, 정권의 안위를 위해 국민의 목숨을 사지로 내몬 첫 번째 대형 범죄였습니다.
사사오입 헌법 유린 찬양 (1954년 11월 전후 사설):이승만이 장기 집권을 위해 수학적 억지를 부려 헌법을 뜯어고친 '사사오입 개헌' 폭거가 발생하자,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이를 "국가 안정을 위한 부득이한 조치"라며 헌법 파괴 행위에 든든한 면죄부를 쥐여주었습니다.
3·15 부정선거 옹호와 민중 탄압 (1960년 3~4월 자 지면):정권의 조직적인 표 조작에 분노한 마산 시민들과 학생들이 의로운 시위를 일으키자, 이들은 진실을 보도하기는커녕 "불순분자의 조종에 의한 치안 교란"이라며 시위대를 매도했습니다. 4·19 혁명의 불씨를 끄기 위해 독재 정권의 입틀막 장치를 자처했던 부끄러운 사료들이 버젓이 박제되어 있습니다.
2. 박정희 정권기: '중앙일보'의 등판과 유신 독재 찬양의 3대장 완성
이승만이 쫓겨난 후,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 시절에 드디어 대한민국 언론 잔혹사의 마지막 퍼즐인 중앙일보가 등판(1965년 삼성 이병철 회장에 의해 창간)합니다. 이때부터 '조중동'이라는 거대 기득권 카르텔이 완성되어 독재 정권과 본격적인 정경유착을 시작합니다.
중앙일보 (창간과 동시에 시작된 유신 아첨):창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72년, 박정희가 영구 집권을 위해 헌법을 마비시킨 '10월 유신'을 선포하자 중앙일보는 기다렸다는 듯 사설과 칼럼을 통해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한 역사적 결단"이라며 찬양의 용비어천가를 불렀습니다. 삼성이 정권의 특혜를 받아 재벌로 덩치를 키우는 동안, 중앙일보는 그 정경유착을 가리는 방패막이이자 독재를 미화하는 세련된 포장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조선일보 (유신 찬양의 선봉장, 방우영 라인의 만행):조선일보 역시 10월 유신을 "조국의 평화 통일과 번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 미화했습니다. 선종구, 방우영 등 당시 사주와 데스크 라인은 박정희 정권의 장단에 맞춰 민주화 운동가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모는 프레임의 설계자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동아일보 (자유언론 탄압과 자사 기자 배신 잔혹사, 1975년):기자들이 1974년 정권의 검열에 저항하며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외치자, 박정희 정권은 동아일보에 광고 중단 압박을 가했습니다. 이때 동아일보 사주 카르텔이 선택한 것은 언론의 자유가 아닌 '정권으로의 기생'이었습니다. 이들은 1975년, 진실을 말하려던 수많은 진짜 기자들을 강제로 길거리로 내쫓으며 정권에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3. 전두환 정권기: 5·18 광주 학살 미화와 언론 통폐합 속의 호의호식
이승만과 박정희의 가랑이 사이에서 단물을 빨아먹던 조중동의 기생 습성은 1980년 신군부 전두환 앞을 지나며 잔인함의 정점을 찍습니다.
조중동 카르텔의 광주 학살 미화 합작 (1980년 5월 28일 자 조선일보 사설 등):전두환이 총칼로 광주 시민들을 학살할 때, 조중동 삼총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광주의 처절한 민주화 요구를 "불순분자들과 폭도들에 의한 유혈 폭동"으로 매도했습니다. 특히 조선일보는 군부의 학살을 가리켜 "공공의 안녕을 위한 위대한 결단"이라 칭송했습니다.
언론통폐합 속에서의 특혜와 성장:전두환 정권이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사들을 강제로 통폐합할 때, 정권에 철저히 복종한 조중동은 오히려 독과점 지위를 누리며 덩치를 키웠습니다. 중앙일보 역시 삼성재벌의 배경과 신군부에 대한 철저한 아첨을 무기로 살아남아, 전두환을 "난국을 수습한 위대한 지도자"로 미화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는 총독부에, 해방 후에는 이승만 독재에, 유신 시절에는 박정희 체제에, 군부 시절에는 전두환 국보위에 기생하며 오직 아첨과 곡학아세(曲學阿世)로 명줄을 이어온 자들이 오늘날 공정과 정의를 논하는 꼬라지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대한 모독입니다.
자신들이 쥔 얄팍한 펜대로 독재자들을 신격화하고 국민을 기만하던 그 나쁜 버릇을 근현대사 내내 단 한 순간도 버리지 못한 채, 여전히 기득권의 단물에 취해 민심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는 그 오만 방자함이 참 눈 뜨고 봐주기 민망할 지경입니다.
뼈속까지 아첨과 기생으로 점철된 쓰레기 활자 카르텔의 연속성을 엄숙하게 꾸짖으며, 다음 3부에서는 이들의 하수인이 되어 받아쓰기 바쁜 '기레기' 새끼들의 실명과, 그들이 기생의 대가로 매국당의 그늘 아래서 누리고 있는 지리멸렬한 부유함의 실태를 확실하게 구분하여 공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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