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언젠가 멸족된 왜족을 전시할 날이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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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콘텐츠⑮] 야만의 시대, ‘전시장의 동물이 된 조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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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 10전, 어린이와 군인은 5전"
러일전쟁 이후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상실되자, 다시 조선인은 동물원 원숭이 신세로 등장한다.
1907년 3월 일왕 무스히토의 재위 40주년을 기념하는 도쿄권업박람회가 우에노 공원에서 열렸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본의 발전상을 널리 알리는 박람회였다.
조선관을 꾸민 것은 조선통감부였다. 조선관에는 옷장, 식기, 농기구, 옷감 등이 전시됐다.
조선관의 관람객들이 줄어들자 박람회를 운영하던 일본상인회가 관람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흥행카드로 사용한 것이 '조선인 전시'였다.
조선관 옆에 별도로 마련된 수정관(보옥전)에는 한복을 입은 조선인 남녀가 전시되었다.
수정관은 박람회 입장료 외 별도로 돈을 더내야 들어갈 수 있었다. 수정관의 입장료는 어른은 10전, 어린이와 군인은 5전이었다. 
1907년 도쿄권업박람회에 전시된 박양항과 정명선
수정궁(보옥전)의 끝자락에 거울로 된 방에 전시된 조선인 남녀는 박양항과 정명선이었다.
당시 남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었으며, 여자는 긴치마를 입고 의자에 앉아 관람객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 "조선동물 두 마리가 있는데 아주 우습다"
일본인들은 난간 밖에서 난간 안에 갇힌 조선인 남녀를 구경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 안에 갇힌 동물을 구경하는 인간들의 모습과 꼭 같았다.
이렇게 두 조선인 남녀는 수정관에 말없이 전시되어 있다가 저녁이면 숙소로 돌아가는 생활을 되풀이했다.
대한매일신보는 조선인을 구경한 일본인들의 반응을 실었다. "박람회장에 조선동물 두 마리가 있는데 아주 우습다"
일본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두 조선인은 왜 그자리에 있게 되었을까.
대구에 살던 조선 여인 정명선은 일본 박람회가서 심부름만 하면 돈을 벌게 해준다는 꼬임에 빠졌다.
5월 10일 대구를 출발한 정씨는 역시 같은 말을 들은 부산 출신 박씨와 함께 5월 13일 도쿄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박람회장에 전시되 하루종일 치욕적인 시선을 견디며 '조선 동물 두마리' 라는 말을 들으며 짐승 취급을 받았다.
수정관은 흥행에 성공했다. 수많은 일본 관람객들은 조선인을 구경했다. 이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조선인 유학생들은 충격을 받았다.
「태극학보」1907년 6월 24일 기사에는 "슬프고 애달픈 기색이 얼굴에 비치니 보는 우리가 참혹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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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아 피가 끓는다 근친상간이 문화인 피폭원숭이들
왜놈 쪽발이 눈에 당시 조선인들은 연예인급이었겠지 키크고 잘생긴 연예인 본 적 없어서 돈 내고 본 거여
미쿡이 리틀보이, 팻맨에 이어 주요 도시에 열발정도 도 선물해 줬어야 하는데....일년이 열두달이니 열두발은 맞아야지
방사능 원숭이들 나라빚 터질날만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