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의 차

왕사남, 영월 엄씨 충의공 엄흥도의 묘에 다녀왔습니다.

영월 엄흥도의 묘에 다녀왔습니다.


프롤로그


다들 아시다시피 조선은 이씨 조선이라여 이성계가 개창하였죠.

당시 백성들에게는 나랏님은 고려든 조선이든 상관이 없었습니다.

조선 중기 때까지 나라를 "고려"라고 생각했던 백성들도 많았습니다.

이는 문헌상 기록에도 많이 등장합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역성혁명에 의해 개창이 되었고

조선조 임금들은 이성계의 직계이긴 하나

또한 수양대군 "이유"의 직계후손들입니다. 

즉, 조선조 임금들은 수양대군 이유가 직계상 조상입니다. 

그 웃대 세종대왕의 직계도 맞는 말이나 수양대군 이유는 세종대왕의 둘째아들이고

장남 문종의 직계는 단종이 단명함으써 임금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종의 6남 금성대군 또한 반역으로 몰려 경북 영주( 순흥 )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죠. 금성대군 또한 멸족당했고 말이죠.


왜 이 이야기를 하는고 하니


수양에 의한 왕위찬탈 쿠데타가 발발하고 세월이 200여년이 지나고 수양대군( 세조 )의 직계후손인 숙종 대에 와서야 단종에 대한 사면이 이뤄지고 단종의 시신을 거둔 엄흥도를 사면했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충절, 

주도한 이는 당대 유림의 거두 우암 송시열이 주도를 했죠.,

엄흥도는 비록 작은 고을의 호장이라는 하급관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충의공"이라는 존호를 조정으로부터 하사받습니다. 

즉, 수양대군이라는 인물이 저지른 죄를 그 직계후손 임금들이 직접적인 아니나 간접적으로 부정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영조, 정조 모두 수양대군의 후손들이죠.

수양대군의 후손들인 숙종 영조 정조 고종 등등은 엄흥도에 대한 사면을 단행합니다. 그리고 명예회복을 해주었죠.

조선조 양반 등등 귀족들은 자신의 안위, 부귀를 위하여 단종에 대한 것은 그 어떠한 조치나 행적을 보여준바 없었고 유일하게 생육신이나 사육신, 엄흥도 만이 그러한 충절을 보여주었으니 이들은 후대에 와서 명예회복을 조정에서 해준 것은 정말 뜻이 깊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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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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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군에 묘지가 있다고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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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위너

군위에 엄흥도 후손들이 살고 있고 문경에도 살고 있고 그 외에도 살고 잇는 걸로 알고 있어요 영월에 묘지는 가묘가 맞군요 당시 엄흥도는 조정의 어명, 즉 시신을 거두는 자는 멸족이라는 엄벌에 처할 것이다라는 것에 대하여 자신이 의로운 일을 함에도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고 감수하겠다고 하였죠. 그리고 장남 차남 3남 등등을 전국 각지로 피신시킵니다. 그곳이 군위 문경 함경도 도는 울산으로 말이죠. 영월 엄씨들이 세월이 흘러 이곳 영월 땅에 엄흥도의 묘를 해놓은걸로 압니다. 가보면 "기적비"에도 그 뜻을 새겨놓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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쐬빠따

영월에 있는건 가묘입니다 진묘는 대구군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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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위너

영월의 묘가 가묘라고 나오네요. 진묘는 군위가 맞을듯 합니다. 정조 때인가 영월부사가 문경에 내려와서 엄흥도에 대한 헌사비를 내린 기록이 남아있어요 그 비석이 나중에 발견이 되어 고고학적으로 연구가 되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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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둬

엄흥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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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위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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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의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