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김주열 열사의 이름을 기억하듯,
그를 죽이고 시신까지 유기하는 만행을 저지른
이름도 이참에 꼭 기억하자.
그의 이름은 박종표다. 그는 사형은커녕
몇 해 뒤 석방되어 고향에 내려가
여생을 평안히 살았다."
박종표는 지난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반민족행위자다.
일제강점기 헌병 보조원으로 복무하며
독립운동가들을 잔혹하게 고문한 친일파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일본군 헌병 출신의 노덕술'이라고 불릴 만큼
악명 높은 인물이었다.
해방 후 반민특위가 해체되면서 그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경찰에 임용됐다.
마치 자신의 친일 혐의를 세탁이라도 하려는 듯
이승만 독재정권의 수족 노릇을 충실히 했다.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바다에 유기한 천인공노할
짓도 정권을 비호하기 위한 그의 '충성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4.19 혁명 직후 그는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5.16 군사 정변 직후 박정희
정권에 의해 대폭 감형되어 불과 몇 해 만에
풀려났다.
4.19 혁명을 짓밟은 쿠데타 세력이 그를 재판의
피해자로 둔갑시킨 꼴이다.
해방 직후 친일 청산의 실패는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유기한 범죄자에게조차 관용을 베푸는 후과를
낳고 말았다.
이 모든것이 광복이후 친일파를 척결하지
못한 결과.
1945년 프랑스 경우는
정식재판에 의한 사형선고 6763명
민병대에 의한 즉결처형이 9000명 이상
총살 당하는 나치 부역자.
나치에 부역찬 언론인들과 지식인들은
무조건 총살. 프랑스의 정신을 더럽힌 죄로


댓글 4
기억 합시다
국가 혼란을 최소화 해야 한다는 이유로 ... 독립군을 때려잡고 일본에 부역했던... 친일파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검찰개혁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 정부안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우릴 반명 강경파하고 부른다.. .
런승만-다까끼-----.. ... . .. .. .. ..국민의 짐. 뿌리가..... .....
눈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