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당신이 밖에서 근엄한 척을 해도 절대로 안 믿는 이유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나이 40년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폄범한 말일수도 있는데 저는 그 말이 참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저도 제 얼굴에 책임을 지고 싶습니다
이제 제 나이도 70이 넘었는데 70년을 예수 믿고 살았으면 제 얼굴에 흔적이 나타나야 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을 하는데 그런데 그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제 설교에는 제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저는 설교를 예수 믿고 사는 이야기로 풀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와서 어떻게 증거와 실상으로 나타났는가 그것을 주로 이야기 하고 싶어서 제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제 설교에는 아이들 이야기도 참 많고 손주 이야기도 많고 제가 첫 손자 낳았을때 하도 손녀딸 이야기를 했는데 미국에 가서 마트에 갔는데 어느 남자 집사님이
"얘가 그 유명한 민희 입니까?"
그래서 웃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제 주변 이야기가 많습니다
제가 개고양이를 좋아해서 한때는 설교중에 개 이야기가 참 많았습니다 우리 동안교회 청년들이
"우리 목사님 또 개소리 하셨다"
그래서 웃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인데 요한복음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에 거하심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니까 은혜가 충만한 것입니다 저도 하나님의 말씀이 설교자의 삶에 육신이 될때 그것이 교인들에게 은혜로 더 깊이 전달될수 있겠다 라고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군대를 방위로 갔다와서 유격 훈련을 받지 못했지만 저희 둘째 아이 셋째 아이가 유격 조교를 했었습니다
유격 조교가 얼마나 힘듭니까 한번 받는 것도 아니고 숙달이 되야 하니까 그래서유격 훈련하기 전에 숙달된 조교가 시범을 보이겠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했습니다
저는 목사가 말씀에 숙달된 유격조교가 많아져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완전하지는 못하지마 해보고 살아보고 숙달되어서 그것을 전달해야 전달력이 더 깊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그랬는데 믿음은 보이지 않지마 그 열매는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를 보이지 않는 믿음을 설교하기 위해서 보이는 열매와 증거를 들이 대면서 설교라도 말씀이 증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그런 설교를 하는데 그 믿음의 실상과 증거는 다 축복으로 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살았다는 그게 맞다 옳다 복받았다 잘 살게 되었다 하게 되는데 하다 보니까 그것은 결국은 제 자랑이 되는때가 참 많았습니다
그런 설교를 할때 제가 받은 복 말씀대로 살아서 얻었던 결과들을 이야기 할때 은혜 받은 분들도 계시지만 적지 않은 분들이 시험에 듭니다
"저 목사는 설교는 잘하지 않고 자기 자랑만 한다"
그래서 그런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제 자랑을 하려고 하는게 아닙니다 예수 믿어서 얻는 복이 자랑인데 그 복을 받게된 이유가 뭔가 하나님 말씀 믿음 그것을 자랑하려고 하는 것인데 그냥 자기자랑으로 받아들여져서 시험드는 교인들이 꽤나 꽤나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잘 못받아 들이는데 제 책임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해봅니다 저도 제가 설교하는것 보곤 합니다
이렇게 보고나면 또 뭐 어디 인터뷰하고 특별 인터뷰한것을 이렇게 보면 저도 제가 못마땅 할때가 참 많습니다
"아이 되게 잘난척 했구나 조금 지나쳤구나 하나님 자랑한다면서 내 자랑도 거기 숨어 있었구나!"
저도 참 마음에 들지 않을때가 참 많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성공한 얼굴빛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좋아뵈지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유의 얼굴들이 있습니다 큰교회를 목회한 목회자들 큰 교회를 성공이라고 꼭 할수는 없지만 큰 교회를 목회한 목회자들의 얼굴에는 큰 교회를 목회한 목회자들의 얼굴이 있습니다
제게도 있습니다 제가 압니다 그것을 지워버리고 싶은데 그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나 큰 교회 목회했던 사람이야!"
"나 이런 사람이야!"
이제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또 교회 개혁을 외치고 할때보면 정의 하나님의 의로움 공의를 이야기 하다보면 나만 의롭고 다른 사람은 다 불의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그런 영적인 오만함이 숨기가 참 어렵습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됩니다
그것참 지워 버리고 싶은데 나이 칠십이 넘었는데도 제얼굴에 책임을 못지는 것이 못네 안타깝습니다
제가 몇번 이야기를 했었는데 제가 신학교 졸업반때 친구에게
"나는 부잣집 딸하고는 결혼을 안할거야!"
그랬더니 친구는
"나는 가난한집 딸하고는 결혼을 안해!"
그럽니다 그래서 내가 이사람이 이렇게 전도사가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은가 생각 했는데 그 친구가 이야기 했습니다
"네가 이야기 하는게 뭔지 아는데 부잣집 딸이라고 다 잘못되고 가난한집 딸이라고 다 잘못되고 가난한집 딸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라고 부자집 딸의 문제도 있지만 가난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은 그 삶도 참 피곤하게 하고 부정적이고 날카롭고 비판적이고 그런 면이 있다고 그러니까 무조건 부잣집 딸이니 가난한집 딸이니 그것으로 기존 삼으면 안된다"
하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게 저한테 참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 그말이 맞구나 내가 너무 편협하게 생각했구나 !"
그런데 제가 그때 기도하고 생각한게 뭔가 하면
"부자인데 부자티가 안나는 사람 가난한데 가난한 티가 안나는 사람 그 사람과 살게 해주십시요!"
그런 기도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분 부자는 부자티가 납니다 그런데 부자티가 나는 부자는 그렇게 근사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한데 가난한 티가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얼굴과 삶에 다 나타납니다
공격적이고 날카롭고 부정적이고 그런 것들로 나타나기 쉽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것을 극복하지 못한 것인데 그것이 얼굴과 삶에 나타나면 사람을 참 피곤하게 합니다 그래서 부자인데 부자티가 안나는 사람 그게 사도바울이 이야기한
"나는 부한데도 처할줄 알고 "
하는 그것이 아닐까요?
"나는 비천한데도 처할줄 알고 "
그게 가난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할수 있는데 하나님을 믿으면 부자 인데도 부자 티안나고 가난한데도 가난한 티가 없고 상처가 없고 교만하지 않고 부자인데 그것이 정말 잘 사는 것인데 그게 여간만 어렵지 않습니다
평생 예수를 믿었는데 아직도 자신의 얼굴 하나에 책임을 지지 못한다고 하는게 이게 속상합니다
오늘 사도 행전에는 늘 읽던 말씀인데 스데반이 순교할때 이야기를 기록했는데 스데반의 그 한마디가 참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공회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
여러분 지금 그 자리가 천사의 얼굴을 하고 대할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자기를 공격하고 억울하게 하고 죽일려고 하고 하는 사람들에 둘러 싸여 있는데 그들앞에서 찬사의 얼굴 할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실력인가 정말 스데반은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질수 있는 그 믿음의 수준에 이러렀던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이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중 큰 교회 목사님이 계신데 그의 소원이 예수님 닮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형상으로 창조 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예수를 믿었다 하면 우리의 삶과 말하는 것과 삶이 하나님을 닮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결국은 얼굴에서 나타납니다 눈빛에서 나타납니다 얼굴의 표정에서 나타납니다
평생 예수 믿고 살면서 나름대로 마름대로 살려고 애쓰면서 또 무엇이 그른줄 알고 교회개혁한다고 정의를 이야기하고그렇게 사는데 정의를 이야기하는 얼굴이 하나님 닮지 못했을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간증하는데 하나님의 얼굴빛이 아니고 나 잘났다 그러는 낯빛이 제 눈에도 보입니다
어떻게 하면그냥 몸에 잘 익어서 스데반 처럼 그냥 천사의 얼굴 같을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낯빛 보여줄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다투고 싸우고 미워해야 할 자리에서도 천사의 얼굴을 했던 스데반과 같은 순종의 신앙생활 할수 있는 그 욕심을 내고 살아가는 여러분 되길 축원드립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중에서>
<오늘 본문 말씀>
사도행전6장 15절 :
공회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낱말뜻>
스데반 : 기독교 역사상 첫번째 순교자 돌로 쳐 죽임을 당함
순교당하는 순간에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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