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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시대 경찰청장 장붕익과 \"범죄와의 전쟁\"


조선시대 포도청은 지금의 경찰과 일부 검찰 업무를 하던 곳이다.

서울과 경기 일부가 관할이고 좌,우 포도청 2개 조직과 수장은

각 포도청 포도대장 2인으로 종2품 직이다.

여러 위인들이 있었으나 오늘은 장붕익 포도대장을 알리고 싶다.


숙종 25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하다 소론의 탄핵으로

파직되었으나 다시 등용되어 경상도 좌병사를 거쳤다.

경종 3년 신임사화때 함경도로 유배를 갔으나 2년뒤

영조가 즉위하자 풀려나 어영대장, 훈련대장, 형조참판

우포도대장을 역임한다.

영조 3년 대간들의 탄핵으로 또 파직되지만 이인좌의 난에

진어장군으로 임명되어 북한산성을 지키고 수원까지 

출병하여 난 진압에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는 임금께 주청한다.

수십년간 무과 급제자가 수천명인데 임용될 자리가 없어

대부분 무의미하게 지내니 이들을 활용할 것을 건의한다.

이순신 장군이 그랬듯이 조선은 갈수록 문과를 우대하고

무과는 차별하는 현상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있었던 시기이기에 충무공이 알려지고 출세한거지

전쟁이 없던 숙종,경종 그리고 영조시대에는 무과 출신은 찬밥이었다.

그 비대칭이 결국 조선이 일제에 먹히게 되는거다.


조선시대 조폭들은 지금보다 더 험하고 우수했다.

당시는 조폭이 아니라 검계라고 했는데 고관댁에서 일하는 하인이나 청지기,

관아의 하급관리. 심지어 양반 자제들까지 모여 결성한 비밀 단체였다.

백성들은 벌벌 떨었고 그 폐해는 이루 말하지도 못했다.

가입조건을 보면 몸에 칼자국이 반드시 있어야 했다.

삿갓을 쓰고 주로 밤에 활동하며 품에는 비수를 지니고 다닌다.


이 범죄조직 검계를 포도대장 장붕익이 치밀한 작전과 준비로 일망타진한다.

햔양, 경기 백성들은 환호했고 안도했다.

조정에도 그 여파는 쎄게 불었다.

장붕익은 형조판서에 오르고 말년엔 존경하던 충무공의 거북선 개조도와 

해전의 전술과 해방책 강구에 전력했다.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무숙(武肅)이라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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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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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으로만든두부

역사를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은 종자들..... 충무공이 누구냐? 그저 광화문 동상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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