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나라 조선.....
말단 향리까지도 나라를 위해 희생했는데... 선조 신발은 진짜 용서가 안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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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승모근BEST
집에가서 써먹어야지 '당신 식사량이 어떻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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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이승모근
집에가서 써먹어야지 '당신 식사량이 어떻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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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석
내일까지 살아계시기를ㆍㆍ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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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엽기
@청석 살아는 계실거 같아요. 죽빵을 맞아서 얼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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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벗꽃
기록의 나라 조선.....
말단 향리까지도 나라를 위해 희생했는데... 선조 신발은 진짜 용서가 안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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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찍과38퍼는디지자
1592년 음력 4월13일(양력 5월23일)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18,000명이후
총 병력 약 15만8700명이 1차로
쳐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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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라보타이
그래서 예전에는 군대 일보 보고가 대외비였습니다.
밥 먹는 양 산출을 하기위해 기준량 x 일보량 x 끼니를 해야 했거든요.
그럼 정확한 병력수가 산출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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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땜에글쓸일없기를
식사량도 계산했겠죠?
당시 조선인 평균 식사량이라 왜군 식사량 차이 비교하면 3배 차이라 하더라고요.
약 7홉 (약 420~450ml) : 약 2홉 (약 120~150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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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딜
같이 담배 피면서 키야 좋네 하면서 들어온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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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비행차
선조,고종,박양,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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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1021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왜군이 1군, 2군 이런 식으로 따로 상륙하고, 별도로 진군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식사량만으로 전군 추정이 가능하지요? 향리가 잡혀 갔던 부대의 인원수만이라면 몰라도, 전군이 모두 집합한 적이 있어야 왜군 전체 병력의 추산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임진왜란이 4월인가 발발하고 평양성 전투가 7월인데, 3개월도 안되는 사이에 왜군은 조선 향리를 잡았다가 마음에 들어 풀어주었고, 그 사이에 그 향리는 왜군 전 병력을 파악했다는 것인데, 이게 가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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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바르다
배 척당 인원 추상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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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1021
위 글에 어디 배 숫자를 세서 계산했다는 이야기가 있나요? 그랬으면 부산 앞바다에서 왜군 배를 매일 세서 알았다고 해야지요. 식사량으로 알았다고 하는데, 정확히 어디에서 그랬다는 것인지(부산인지?)가 특정되어야 정확하지요. 그리고 왜군이 한 3개월도 안돼서 포로로 잡았던 조선 향리를 풀어주는 착한 군인들이었나요?(명군이 참전하기 전이라고 윗 글에 쓰여 있으니 3개월 정도로 봐야겠지요)
댓글 12
기록의 나라 조선..... 말단 향리까지도 나라를 위해 희생했는데... 선조 신발은 진짜 용서가 안됀다~~~
집에가서 써먹어야지 '당신 식사량이 어떻게 돼?'
집에가서 써먹어야지 '당신 식사량이 어떻게 돼?'
내일까지 살아계시기를ㆍㆍㆍ
@청석 살아는 계실거 같아요. 죽빵을 맞아서 얼굴이...
기록의 나라 조선..... 말단 향리까지도 나라를 위해 희생했는데... 선조 신발은 진짜 용서가 안됀다~~~
1592년 음력 4월13일(양력 5월23일)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18,000명이후 총 병력 약 15만8700명이 1차로 쳐들어옵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군대 일보 보고가 대외비였습니다. 밥 먹는 양 산출을 하기위해 기준량 x 일보량 x 끼니를 해야 했거든요. 그럼 정확한 병력수가 산출되기 때문이죠.
식사량도 계산했겠죠? 당시 조선인 평균 식사량이라 왜군 식사량 차이 비교하면 3배 차이라 하더라고요. 약 7홉 (약 420~450ml) : 약 2홉 (약 120~150ml)
같이 담배 피면서 키야 좋네 하면서 들어온듯
선조,고종,박양,윤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왜군이 1군, 2군 이런 식으로 따로 상륙하고, 별도로 진군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식사량만으로 전군 추정이 가능하지요? 향리가 잡혀 갔던 부대의 인원수만이라면 몰라도, 전군이 모두 집합한 적이 있어야 왜군 전체 병력의 추산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임진왜란이 4월인가 발발하고 평양성 전투가 7월인데, 3개월도 안되는 사이에 왜군은 조선 향리를 잡았다가 마음에 들어 풀어주었고, 그 사이에 그 향리는 왜군 전 병력을 파악했다는 것인데, 이게 가능할까요?
배 척당 인원 추상가능합니다
위 글에 어디 배 숫자를 세서 계산했다는 이야기가 있나요? 그랬으면 부산 앞바다에서 왜군 배를 매일 세서 알았다고 해야지요. 식사량으로 알았다고 하는데, 정확히 어디에서 그랬다는 것인지(부산인지?)가 특정되어야 정확하지요. 그리고 왜군이 한 3개월도 안돼서 포로로 잡았던 조선 향리를 풀어주는 착한 군인들이었나요?(명군이 참전하기 전이라고 윗 글에 쓰여 있으니 3개월 정도로 봐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