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똥; 좀비 똥파리”
(60% 대의 지지율과 코스피 1만 시대, 그런데 왜 '좀비’가 부활했나?)
대통령 지지율 60% 대. 코스피 1만 돌파 목전.
대한민국 위상은 역사상 최고점이다.
정치공학적으로 이번 지방선거는 질 수 없는 게임이었다.
아니, 져서는 안 되는 선거였다.
그런데 졌다. 그것도 최악의 상대들에게…
내란의 그림자에 서 있었던 자들.
한동훈, 이진숙, 김영환, 추경호, 김태규 등
빵과 양심을 거래하고, 법복의 무게를 조롱하며,
세상 가장 옹졸한 배신과 억지를 훈장처럼
달고 다니던 자들이 화려하게 살아났다.
국민의 분노가 임계점을 넘었음에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자들이
대거 당선증을 쥐었다.
왜일까?
착각하지 말자. 패인은 외부의 변수가 아니다.
여의도의 흔한 변명거리인 '부동산 심판론'?
데이터는 다르게 말한다.
주요 접전지의 부동산 민감 계층 투표율 및
득표율 변동 폭은 당락을 가를
유의미한 수준이 아니었다.
2030세대의 이탈?
그 역시 본질을 가리기 위한
정치권의 편의적 핑계에 불과하다.
진짜 패인은 내부의 '오만'과 '권력투쟁'이다.
적진이 무너지는 사이,
우리 안의 몇몇 그룹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선거의 승패보다 '포스트 이재명'의 지분 계산이 먼저였다.
권력의 단맛에 취해 섣부른 승리의 도취감에 빠져 있는 동안,
현장의 위기 신호를 읽어낼 데이터 분석도,
돌발 변수에 대한 대비책도 실종됐다.
우리는 최상의 거시 지표 위에서,
최악의 자만심으로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그런데 더 문제인 것은, 뼈아픈 심판을 당하고도
반성보다 책임을 떠넘기고,
당내 갈라치기와 저주가 역병처럼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죽지도 않고 선거철마다 기어 나와
아군의 피를 빨아먹는 비열한 족속들.
‘그들’이다.
나는 오늘부터 ‘이들’을 '좀똥(좀비 똥파리)'이라 부르겠다.
이들은 외부의 적보다 치명적이다.
내부의 결속을 갉아먹고 공동체를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경고한다. 우리 편끼리 싸울 시간이 없다.
이대로 '좀똥'들의 난동을 방치한다면,
다음엔 한동훈과 이진숙의 부활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분열의 끝은 공멸이다.
자칫하면 우리는 김건희의 화려한 귀환을
두 눈 뜨고 지켜봐야 할지도 모른다.
분노의 방향을 통제하자!
오만을 버리고 다시 결속해야 한다.
그것만이 이 지독한 좀비들의 숨통을 끊을
유일한 정치적 백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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