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인 1표'라는 잔인한 가면, 정청래대표와 민주당이 연 중우정치의 서막
‘1인 1표’. 이보다 더 직관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절대 명제가 또 있을까. 신분과 재산, 직책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똑같은 무게의 한 표를 쥐여주겠다는 이 선언은 언제나 ‘정의의 가면’을 쓰고 등장해 우리를 매혹한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주도하여 끝내 가결시킨 ‘대의원·권리당원 1인 1표제’ 당헌 개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표면적으로는 기득권 카르텔을 타파하고 소수 엘리트의 ‘체육관 선거’를 차단하겠다는, 이른바 ‘당원 주권 시대’의 완성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춤을 췄다. 일반 당원에게 정치적 효능감을 돌려주겠다는 명분은 엄숙하기까지 했다. 온갖 감언이설로 포장된 이 선언 앞에 당원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이 제도가 통과되던 당시, 그 화려한 장막 뒤에서는 절차적 정당성과 시기를 둘러싼 파열음이 끊이지 않았다. 반대의 목소리는 당 지도부 핵심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언주, 한준호 최고위원 등은 "의견 수렴이 너무나 부족하다", "지나치게 즉흥적이고 졸속으로 추진된다"라며 정면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를 기계적으로 1대 1로 맞추는 고도의 정당 개혁을 충분한 숙의도 없이 밀어붙이는 지도부의 독단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특히 이 개정안이 올해 8월 치러질 전당대회부터 곧바로 적용된다는 점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당내에서는 즉각 '정 대표가 자신의 대표직 재선과 연임을 위해 급조한 셀프 개정'이라는 사심(私心) 논란이 전면화되었다. 숫자가 압도적인 권리당원의 표심을 장악해 전당대회를 치르겠다는 지독하게 계산된 포석이라는 지적이었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정청래 대표 측은 필사적인 여론전과 방어벽 구축에 나섰다. 박수현 당시 수석대변인은 페이스북을 통해 "정 대표가 말한 적도 없는 '대표 재선'을 위한 '갑툭튀'가 아니며, 1인 1표 지향은 아래로부터 봇물처럼 터져 나온 요구"라고 강력히 선을 그었다. 나아가 "이상의 논란은 해당 행위"라며 비판 세력의 입을 막는 철벽 방어에 나섰다.
정 대표 역시 주말 동안 "100% 경선을 하면 당대표도 권한을 내려놓는 것"이라며 사심 논란을 일축하는 동시에, 이재명 대통령의 당 대표 시절 발언인 "대의원·권리당원 비율이 1대 1로 가야 한다", "1인 1표 열망이 큰 건 사실이다"라는 문구를 연일 공유하며 이른바 '이심(李心)'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였다. 자신들의 일방 독주가 이재명 정부의 정신을 계승하는 '공정의 결정체'인 양 포장한 것이다.
그러나 감언이설의 축제가 끝나고 6.3 지방선거를 거치며 남은 현실은 서글프게도 민주주의의 고도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도의 가장 취약한 틈새를 파고든 ‘중우(衆愚)정치의 서막’이자, 지독하게 영리하게 설계된 시스템 독재의 경고음이다. 실제로 지방선거 이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공간은 이 제도가 불러온 부작용에 대한 날 선 비판과 우려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수십 년간 정당의 지역적 균형과 숙의를 지탱해 온 대의원제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오직 ‘머릿수’와 ‘동원력’만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기형적인 구조가 고착화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맹신했던 1인 1표제의 등가성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정당 민주주의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이 제도가 불러온 가장 뼈아픈 비극은 풀뿌리 정치를 현장에서 지켜야 할 지역위원장들의 몰락이다. 인구가 많고 지지세가 강한 특정 ‘텃밭’에 당원이 과도하게 쏠려 있는 현실에서, 숫자의 보정 장치 없는 기계적 평등은 곧 험지나 인구 소멸 지역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지워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과거 대의원제가 부족하게나마 유지해 왔던 지리적 대의성과 지역적 균형은 순식간에 붕괴했다.
그 결과 취약 지역의 위원장들은 주민들의 민심을 살피고 정책을 고민하는 대신, 모바일 화면 속 강성 당원들의 입맛에 맞는 메시지를 복사해 붙여넣는 ‘눈치 보기’ 바쁜 처지로 내몰렸다. 소신과 다양성은 사치가 되었고, 오직 집단적 흐름에 주파수를 맞춰야만 살아남는 ‘디지털 종속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온라인 중심의 1인 1표제가 필연적으로 ‘목소리 큰 소수’와 이들을 움직이는 ‘빅 스피커’들에게 권력을 집중시킨다는 점이다. 논리와 이성적인 토론, 숙의의 과정은 사라진 지 오래다. 특정 인플루언서나 정치 유튜버가 방송에서 좌표를 찍으면, 수만 명의 모바일 당원이 일제히 움직여 투표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현상이 일상화되었다. 감성과 동원력이 이성을 압도하는 ‘팬덤 정치’의 고착화다.
심지어 오프라인의 진정한 민심 대신 대포폰을 동원하거나 모바일 계정을 사재기해 특정 후보를 밀어줄 수 있다는 장사치들의 소문마저 온라인 공간을 흉흉하게 떠돈다. 이것이 정청래 대표가 말한 ‘정당 민주주의의 완성’인가, 아니면 스크린 뒤에 숨은 거대 결성 집단이 기획한 ‘시스템 독재’인가. 결국 합리적인 중간 지대의 당원들은 쇄도하는 문자 폭탄과 사이버 테러 앞에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정치는 숫자의 게임이 맞다. 그러나 그 숫자가 다양성을 압도하고 숙의를 척결할 때, 민주주의는 가장 타락하기 쉬운 괴물로 변한다. 당내에서조차 "충분한 숙의와 토론 없이 밀어붙였다"는 절차적 비민주성에 대한 통렬한 반발이 나왔음에도, 지도부는 이를 ‘해당 행위’라는 낙인을 찍어 입을 막았다. 1인 1표제라는 가장 민주적인 이름의 칼날이 역설적이게도 당내의 건강한 이견을 도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 자리에는 이제 거대한 팬덤의 무비판적인 환호성만 남았다.
민주주의의 성패는 표의 숫자를 맞추는 기계적 평등을 넘어, 그 과정에서 어떻게 ‘다양성과 숙의’를 확보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민주당과 정청래 대표는 지금이라도 거울을 보아야 한다. 당신들이 완성했다는 그 ‘1인 1표’가 진정 당원 모두의 존엄한 권리인지, 아니면 다가올 8월 전당대회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대통령의 발언'과 '광장의 군중'을 동원한 서글픈 연극인지 말이다. 거대한 팬덤의 환호성에 취해 지역의 붕괴와 중우정치의 그늘을 외면하는 정당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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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좀 해 주세요
요약 : 정청래가 민주당에서 통과시킨 당원 1인 1표제는 삽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