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17년 5월부터 1년간 억류됐다 석방된 김학송 선교사는 北에 한국인 선교사 세분이 10년넘게 아직도 北에 억류중이라며 혼자 살아왔다는 미안함에 아직도 잠이 안올 때가 있다 北억류된 우리 국민은 선교사 3명외에 탈북민 4명 총 7명이다.
속히 자유통일을 추진해서 북한 주민들을 개돼지 삶에서 구원해야 하는데 이런 대도 북한 정권은 인정하고 두 국가론을 주장하며 평화와 대화만 타령하는 것인가? 속히 김정은 정권을 전복시키고 자유통일해야 북한 주민들을 독재자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북한에 2017년 5월부터 1년간 억류됐다 석방된 김학송 선교사는 21일 “김정욱·김국기·최춘길 한국인 선교사 세 분이 10년 넘게 아직도 북한에 억류중”이라며 “혼자 살아 나왔다는 미안함에 아직도 잠이 안올 때가 있다”고 했다.
김 선교사는 이날 연세대에서 열린 ‘북한억류 한국 선교사 3인을 집으로’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회의에서 자신의 북한 억류 경험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에서 선교사로 활동중인 김 선교사는 이날 회의 참석을 위해 귀국했다.
이날 국제회의는 북한에 억류된 선교사 가족들을 중심으로 이날 공식 출범한 ‘북한억류국민가족회’와 전환기정의그룹,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김 선교사는 “아직도 북한 감옥에 1년 동안 독방에 있을때 겪은 트라우마 때문에 밤에 악몽을 꾸고 그때일로 현재 파킨슨병이 와서 말이 좀 어눌하고 행동도 굼뜬다”며 “2017년 5월6일 평양에서 나오다가 (공항에서) 체포당했는데 체포당할 때 왜 나를 체포하는지 그 이유도 전혀 모른채 체포당했다”고 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당시 김 선교사의 체포·억류 사실을 공개하면서 “공화국(북한) 적대행위를 강행한 혐의”라고 했다. 김 선교사는 2014년 평양과학기술대 농생명학부 농장 담당 기술자로 북한에 입국했다 2017년 5월 평양에서 중국 단둥 집으로 돌아가려다 공항에서 북한 당국에 체포·억류됐다.
김 선교사는 이날 자신이 경험한 끔찍한 억류 생활을 자세히 소개했다. 김 선교사는 “독방 감옥에 들어간 첫날 저녁밥이 나왔는데 밥에도 무짠지에도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며 “먹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다음날 북한 국가정보국(옛 국가보위성) 조사관이 김 선교사를 찾아와 “밥을 안먹으면 공화국법에 반항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며 “반항하면 더 엄중하게 처벌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북한 조사관이 (내가) 제대로 말 안하면 (중국 단둥에 있는) 아내도 잡아온다고 해서 진짜로 집사람까지 잡아올까봐 책상에 머리를 박고 죽을 생각까지도 했다”고 했다.
김 선교사는 “감옥에 들어간 뒤 39일째 되는날인 2017년 6월13일 처음으로 목욕을 시켰다”며 “그때서야 거울을 처음 봤는데 머리는 하얗게 새고 거울 속 내 모습을 나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김 선교사는 북한에 억류됐던 기간에 화장실도 자유롭게 갈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벨을 눌러도 벨을 한번 누르면 (조사관이)오지 않는다”며 “벨을 한 세번은 눌러야 오고 거의 바지에 변을 쌀때쯤이 되면 그때서야 오곤 했다”고 했다.
김 선교사는 “미국 국적자니까 때리진 않았지만 이런게 고문이나 다름없었다”며 “감옥이 창고 같은 곳이었는데 벌레가 너무 많아서 잠들려고 하면 벌레가 귀와 코로 막 들어왔다”고 했다.
북한 조사관들은 김 선교사가 북한에 억류된지 39일째 되는날 첫 목욕을 시킨 이후 그의 머리에 보자기를 씌운뒤 어디론가 데려갔다고 한다. 고려호텔로 추정되는 건물 2층에 도착해 보자기를 벗고 보니 당시 조셉 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눈 앞에 있었다고 한다.
김 선교사는 “당시만해도 미국 국무부 인사와 만났으니 바로 단박에 석방될 줄 알았는데 한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서 포기했었다”며 “다 포기했는데 2018년 5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직접 북한에 와서 저를 포함 다른분들을 데리고 나왔고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기내 안까지 들어와 저희한테 한 첫마디가 ‘당신들은 미국의 영웅이다’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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