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조선으로 귀화
사야가 김충선 (沙也可 金忠善)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원래는 가토 기요마사 군대의 우선봉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명분 없는 전쟁에 회의를 느껴 부산포에 도착하자마자 부하 3천 명과 함께 조선에 귀화했습니다.
활약: 귀화 후 조선에 조총 제조법과 전술을 전수하고, 함락된 성을 되찾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보상: 선조에게 '김해 김씨' 사성(賜姓)과 '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습니다. 이후 이괄의 난, 병자호란 등에서도 조선을 위해 참전했습니다.
유적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에 김충선 장군의 위패를 모신 녹동서원과 한일우호관이 건립되어 있습니다.
5
원시도
약속을위해 출가..
2
미스터선샤인머스켓
이런 일본인도 있는데,
2찍 매국노들은 아직도 쪽바리 개노릇을 하려고 하니 한심할 뿐이다.
5
펄리오너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 정서가 좀 다르고, 일제시대 함께 착취당했던 곳으로 함께 피해자임. 일본내에서도 오키나와출신이라 차별당함
댓글 8
아주 가끔 제대로된 정상적인 일본인은 낭만이 있음....
감사합니다. 영면하시길.
착한 일본 선생님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신의를 몸소 보여주신 분
착한 일본 선생님
감사합니다. 영면하시길.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신의를 몸소 보여주신 분
아주 가끔 제대로된 정상적인 일본인은 낭만이 있음....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조선으로 귀화 사야가 김충선 (沙也可 金忠善)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원래는 가토 기요마사 군대의 우선봉장이었습니다. 그러나 명분 없는 전쟁에 회의를 느껴 부산포에 도착하자마자 부하 3천 명과 함께 조선에 귀화했습니다. 활약: 귀화 후 조선에 조총 제조법과 전술을 전수하고, 함락된 성을 되찾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보상: 선조에게 '김해 김씨' 사성(賜姓)과 '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습니다. 이후 이괄의 난, 병자호란 등에서도 조선을 위해 참전했습니다. 유적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동에 김충선 장군의 위패를 모신 녹동서원과 한일우호관이 건립되어 있습니다.
약속을위해 출가..
이런 일본인도 있는데, 2찍 매국노들은 아직도 쪽바리 개노릇을 하려고 하니 한심할 뿐이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와 정서가 좀 다르고, 일제시대 함께 착취당했던 곳으로 함께 피해자임. 일본내에서도 오키나와출신이라 차별당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