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혁명은 대 사기극이고, 문명은 인류에게 어둠을 밝히는 새벽이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아주 잔혹하고 불평등함이 숨어 있어요.
문화는 끊임없는 전쟁을 통해 전파되고 뒤섞이면서 더 발달된 문화로 꽃피우게 되었습니다.
쓸모없어 보이는 땅을 통해서 교역을 하긴 했지만 교역을 통한 문화 발달은 어느정도 한계가 있습니다.
(통행세를 요구하고 고대에는 위험했기에 사막길(실크로드)나 유라시아대륙 북쪽의 긴 풀밭길을 교역로로 활용했을 듯 합니다.)
초기 국가가 세워진 이후 노예와 농노가 없는 국가는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층민과 노예는 국가의 지탱과 문화의 발달에 거대한 배터리였던 것 같습니다.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부족간 전쟁이 많기는 했지만 부족원 내에서 평등했고, 공평하게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식량이 될 수 있는 야생 벼와 밀, 보리, 옥수수, 감자 등을 발견한 어떤 부족들이 농사를 지었고, 그걸 본 이웃부족이 땅과 농삿물을 빼앗기 위해 전쟁을 했고, 정복한 부족은 왕과 귀족이 되었습니다.
정복한 부족은 패배한 농사꾼에게 수확량의 반을 내면 맹수도 방어하고 다른 부족이 빼앗지 못하게 막아주겠다고 했고, 내부반란을 잠재우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왕은 신과 대화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정신적으로 세뇌시킵니다.
정복당한 부족의 농사꾼들은 어디 갈 곳도 없고, 먹고 살기 막막하니 불평등을 받아들이고, 농사일 해서 수확량의 반을 바치고, 신전건축에도 동원이 됩니다.
최초 문자는 노예 관리와 수확량 관리,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착취할 수 있을까 해서 발명한 것이겠죠.
세계사를 찾아보면 초기 국가 형성과정에서 반항하는 부족들을 아주 잔혹하게 죽였습니다. 고대에 수십만명을 죽이고, 사람 머리를 전시하고, 사람 가죽으로 북으로 만들든가, 왕에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담은 참혹한 벽화나 판화를 남겨 전시했습니다.
왕과 귀족은 온갖 사치를 다 부리고 착취했습니다.
이런 과정이 바로 문명이 탄생한 과정이고 끊임없는 전쟁으로 문화가 전파되고, 뒤섞이는 과정에서 문화는 더 발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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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논리로 마르크스가 대중을 선동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