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레거시 언론, 이른바 '조중동'의 일탈과 왜곡 보도는 단순한 일시적 타락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의 태생, 즉 뿌리 깊은 '친일 매국'과 '권력 기생'의 DNA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오늘 보배드림의 여러 선배 형님들과 함께 그동안 그들이 필사적으로 감추고 묻어두려 했던 구체적인 역사적 사료의 무덤을 열고, 그 추악한 민낯을 낱낱이 파묘하여 공유하고자 합니다.
조중동의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본질은 바로 '권력에 대한 철저한 기생질과 아첨'입니다.
이들의 펜대는 단 한 번도 민족이나 국민을 대변한 적이 없으며, 오직 당대의 가장 강한 권력자에게 꼬리를 흔들며 생명을 부지해 온 부끄러운 생존 방식을 고수해 왔습니다.
그 첫 단추가 바로 일제강점기 시절의 천박한 사대주의였으며, 이는 명백한 일자와 사료로 증명됩니다.
1. 조선일보: 천황 가문과의 결탁, 그리고 학도병 선동의 선봉장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 시절 단순한 방관자가 아닌, 적극적인 황국신민화의 나팔수였습니다.
1940년 1월 1일 자 신년사: 조선일보는 제호 위에 선명한 일장기를 박아 넣은 것도 모자라, 지면 최상단에 일본 천황 부부의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게재하며 "우리는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서 천황 마하(폐하)의 성은에 보답해야 한다"는 굴종의 서약을 배설했습니다.
1943년 11월 전후 (폐간 전후 지면 및 방응모의 행적): 조선일보의 사주였던 방응모는 친일 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에 참여하며 펜대로 우리 청년들을 사지로 내몰았습니다. "아시아를 지키기 위한 성전에 조선의 학도들이여, 제국의 군인이 되어 영광스럽게 목숨을 바치라"며 징용을 독려하는 논조를 주도했습니다.
2.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 사건의 이면과 황국신민화 사설의 만행동아일보는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지웠던 사건을 자신들의 훈장처럼 내세우지만, 그 이후의 행적은 철저한 아첨과 기생이었습니다.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 발발 직후):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일제의 침략 전쟁을 '동양 평화를 위한 거사'로 미화하기 시작했습니다.
1938년 1월 1일 자 사설: 동아일보는 "대일본제국의 위엄이 온 천하에 떨치고 있으니, 우리 조선 민중 역시 황국신민으로서의 본분을 다해 총후(銃後) 보국에 앞장서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일제의 병참기지 역할을 자처하는 아첨을 떨었습니다. 이후 우리 누이들과 청년들을 사지로 모는 천인공노할 군비 헌납 선동에 앞장섰습니다.
3. 중앙일보: 대를 이어 내려오는 친일 세력의 방계 카르텔오늘날 중앙일보의 뿌리가 되는 삼삼성가와 홍진기 일가의 계보는 권력 기생의 결정체입니다.
사주 일가의 친일 행적: 중앙일보의 회장이었던 홍진기의 장인 등 가문 세력들은 일제강점기 시절 중추원 참의를 지내거나 조선총독부의 사법 관료로서 식민 통치의 칼날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민족의 피눈물을 짜내며 부와 권력을 축적한 친일 사법 카르텔의 자양분이 광복 이후 언론사라는 거대 권력으로 고스란히 이어져 온 것입니다.
이처럼 민족을 배신하고 동포의 고혈 위에 아첨의 제단을 쌓아 거대 언론 기업의 기틀을 닦은 자들이, 오늘날 안보를 논하고 애국을 운운하는 꼬라지는 역사에 대한 모독이자 인륜에 대한 배신일 뿐입니다.
시대와 권력의 주인이 바뀔 때마다 그 강력한 권력의 가랑이 사이로 기어 들어가 목숨을 구걸하고 부를 축적해 온 자들이, 여전히 그 얄팍한 펜대로 민심을 기만하고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고 믿는 그 오만 방자함이 참 눈 뜨고 봐주기 민망할 지경입니다.
태생부터 아첨과 기생으로 점철된 쓰레기 활자 카르텔의 해악을 엄중하게 꾸짖으며,
다음 2부에서는 이들이 일제강점기를 지나 군부 독재 정권이라는 새로운 권력의 품에 어떻게 다시 안겨 국민들을 속여왔는지 그 생생한 기록을 공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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