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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결(無缺)\"의 저주ㅡ창작 단편소설

"무결(無缺)"의 저주. (상)


무결(無缺)의 탑

윤현우 대법관 후보자는 사법부 내에서 '신이 내린 저울'이라 불렸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그의 이마와 한 치의 흐름도 없는 법복 매무새는 그 자체가 사법부의 권위이자 범접할 수 없는 선민의식의 상징이었다. 


그에게 법정은 범죄자를 심판하는 곳이 아니었다. 미개하고 감정적인 일반 국민들에게 '고결한 법의 정신'이 무엇인지 교화하고 훈계하는 신성한 교단이었다.



"대중의 분노는 야만적인 보복 심리에 불과합니다. 사법부는 여론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가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을 교화하여 사회로 복귀시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법치주의의 본질입니다."


그는 평소 피해자의 피맺힌 절규를 감정 과잉으로 치부하며 냉소했다. 반면, 명문대 출신 변호인이 정갈하게 정리해 온 가해자의 반성문은 '지성적인 갱생의 신호'라며 높이 평가했다.


국민들이 그의 판결을 두고 '흉악범의 수호신'이라 비난할 때마다 현우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법을 배우지도 못한 대중이 어찌 판결의 깊이를 이해하겠는가.


그에게 사법부는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 보루를 지키는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 중 하나라고 믿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판단이 크게 틀렸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뒷방에서는 전관예우와 학연으로 얽힌 판·검사들과 고급 요정에서 잔을 부딪치며 이권을 조율하면서도, 법대에만 오르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청렴하고 자비로운 성인의 가면을 썼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무결한 성역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현우의 외동딸 서연이 자취방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전과도 없고 아무런 원한도 없었다. 그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서연을 사냥하듯 공격했고, 끝내 목숨을 빼앗았다.


영안실의 차가운 시트 아래 누워 있는 딸을 마주한 순간, 현우는 숨이 막혔다.


평생 수많은 사망진단서와 부검감정서를 읽어왔지만, 그 종이 위의 죽음과 눈앞의 죽음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피해자의 이름을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피해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이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만이 달랐다.





"무결(無缺)"의 저주. (중)


(무너진 선민(選民)의 가면)



법정 안은 숨소리조차 무겁게 느껴질 만큼 고요했다.

피고인석에 앉은 살인범은 떨리는 목소리로 반성문을 읽기 시작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습니다. 남은 인생은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해 속죄하며, 다시 사회에 나가면 갱생된 인간으로 바르게 살겠습니다."


윤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저 손끝만 미세하게 떨렸다.


심신미약.


우발적 범행.


깊은 반성.


갱생 의지.



수십 년 동안 자신이 판결문에 적어 넣었던 단어들이었다.

수백 번.

어쩌면 수천 번.


그 문장들은 늘 논리적이고 고결해 보였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역겨웠다.

그 문장들 어디에도 서연은 없었다.



서연의 공포도.


서연의 절망도.


서연의 마지막 비명도.



오직 가해자의 사정만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자신이 그동안 고결한 법치주의라 믿어왔던 것들.

객관성과 중립성이라 자부해왔던 것들.


그것들은 정말 정의였을까.

아니면 단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믿기 위해 만든 논리였을까.

그는 갑자기 오래전 법정들이 떠올랐다.


무릎을 꿇고 울던 어머니.


주먹을 움켜쥔 채 떨던 아버지.


판결문을 듣고 바닥에 주저앉던 유가족들.



그때마다 그는 생각했다.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지금 그는 알고 있었다.

비정상이었던 것은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자신이었다.


그의 눈앞에 수많은 피해자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치 그들이 묻는 것 같았다.


이제 알겠느냐고.



현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고인이 움찔했다.

법정이 술렁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닥쳐라."


그 목소리는 너무도 낮았지만 법정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피고인 김기태. 네놈이 읊조리는 그 가증스러운 반성문은 내 법대에 널린 쓰레기 한 장만도 못하다."



기자들이 황급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평론가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완벽한 원칙주의자로 알려진 윤현우 판사가 무너지고 있었다.


"심신미약? 갱생? 교화?"


현우의 입술이 떨렸다.


"그 말들을 나는 수십 년 동안 믿어왔다."


그는 피고인을 노려보았다.


"아니. 믿은 척해왔다."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오만이었다."


그 순간 법정 안에는 더 이상 냉정한 법관이 없었다.


딸을 잃은 한 아버지만이 서 있었다.





"무결(無缺)"의 저주. (하)



무결의 저주



"체동기 분리 및 시뮬레이션 종료합니다. 피험자 깨어납니다."


차가운 기계음과 함께 강렬한 빛이 걷혔다.


현우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떴다.

최첨단 실험실.

가슴에 부착된 센서.

유리벽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연구진들.


"서연이는?"


그는 거의 비명을 지르듯 물었다.


"내 딸은 어디 있습니까?"


대법관 자격 심사 위원장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진정하십시오. 방금 겪으신 모든 것은 대법관 임명 전 사법 철학 검증을 위한 가상현실 시뮬레이션이었습니다."


위원장이 화면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대학 캠퍼스를 걷고 있는 서연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 일도 없었다.

살아 있었다.

현우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시뮬레이션 속 죄책감과 후회가 현실이 되어 그의 영혼에 들러붙어 있었다.


위원장은 차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평가 결과는 실망스럽군요."


"결국 당신도 감정적인 인간이었습니다."


"평소에는 국민들에게 법과 원칙을 강조하더니, 정작 자신에게 일이 닥치자 모든 원칙을 버렸습니다."


"대법관으로서는 부적합합니다."



현우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점점 커졌다.


위원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가 우습습니까?"

현우는 웃음을 멈추고 조용히 물었다.


"위원장님."


"예."


"그 시뮬레이션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습니까?"


"대법관 후보자의 적격성 검증입니다."


현우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가 아니라."

"당신들 말입니다."


실험실 안이 조용해졌다.

위원장이 얼굴을 굳혔다.


"무슨 뜻입니까?"


현우가 물었다.

"위원장님은 그 테스트를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


"사랑하는 자식을 잃어본 적은요?"


"..."


"피해자의 부모가 되어본 적은요?"


위원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현우의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


"판사도."


"검사도."


"대법관도."


"심사위원도."


"누구도 피해자가 되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신들이 정의를 안다고 확신하는 겁니까?"


실험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평생 나는 국민들을 내려다봤습니다."


"내가 더 현명하다고."


"내가 더 이성적이라고."


"내가 더 정의롭다고."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그건 정의가 아니었습니다."


"오만이었습니다."


긴 침묵이 흘렀다.

현우는 위원장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데 당신들도 나와 다르지 않군요."


"당신들 역시 자신들이 정의를 평가할 자격이 있다고 믿고 있으니까."


위원장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현우는 실험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뒤돌아보며 말했다.


"오늘 나는 대법관 자격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당신들이 과연 정의를 평가할 자격이 있는지 한 번이라도 물어본 적 있습니까?"


문이 닫혔다.

실험실에는 침묵만 남았다.

모니터에는 마지막 평가 결과가 떠 있었다.


대법관 적격성 : 부적합


누군가 모니터를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적격한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실험실의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리고 그 질문만이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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