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본 ‘회장님 미담’의 반전, 그리고 씁쓸한 요즘 나의 일상
얼마 전에 인터넷 글을 읽다가 꽤 신선한 미담을 하나 발견했다.
어느 대기업 회장님이 참석한 미팅 자리였는데, 구석에 앉아 있던 협력업체 말단 직원이 조심스럽게 현장의 애로사항을 건의했다고 한다.
주변 임원들은 눈치를 주는데, 회장님은 묵묵히 들으면서 수첩에 그 내용을 직접 메모하더란다.
다들 높은 사람 특유의 ‘형식적인 제스처’겠거니 생각했는데, 며칠 뒤에 그 말단 직원 자리로 직접 전화를 걸어서 "지난번 말한 거 실무 부서에 확인해 보니 이렇게 처리하면 된다네. 조치해 뒀으니 알고 있게."라고 피드백을 줬다는 이야기다.
글을 읽는데 대기업 총수가 비서도 안 거치고 말단 사원한테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게 꽤 감동적이기도 하고, "와, 진짜 멋있는 리더다" 싶었다.
보통 이런 글에는 ‘LG 구본무 회장’이나 ‘삼성 이건희 회장’, 또는 ‘웅진 윤석금 회장’ 같은 이름이 붙어 있길래, 내 블로그에 제대로 한 번 소개해 보고 싶어서 팩트가 맞는지 구글링을 좀 해봤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나왔다.
아무리 기업사나 전직 홍보맨들의 회고록, 당시 기사들을 뒤져봐도 대기업 회장님이 말단 직원한테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명확한 기록이 없었다.
대신 관가랑 언론을 통해 확실하게 검증된 '진짜 원조 팩트'가 따로 튀어나왔다.
이 일화의 진짜 주인공은 대기업 총수가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재임 초기나 후보 시절에 지방 현장 방문하는 걸 좋아했는데, 고위 간부들의 브리핑 대신 7~9급 공무원이나 현장 실무자들의 목소리 듣는 걸 즐겼다고 한다.
하루는 현장 간담회에서 한 말단 직원이 제도적인 모순 때문에 일하기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으니까,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수첩을 꺼내서 그 직원의 이름과 건의 내용을 꼼꼼하게 적었다.
당연히 주변 간부들은 대통령이 그냥 '듣는 척' 퍼포먼스를 하는 줄 알았을 거다.
진짜 소름 돋는 건 며칠 뒤였다.
청와대 비서관을 거친 것도 아니고, 그 말단 직원 사무실 책상 위에 있는 직통 전화로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버린 거다.
"나 노무현인데, 지난번에 말한 그 문제 관련 부처에 확인해 보니까 법 개정이 필요해서 당장은 힘들고, 대신 시행령을 고쳐서 이렇게 해결해 주기로 했습니다. 가르쳐줘서 고마워요."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걸어서 조치 결과를 설명하고 고맙다고 하니, 당시 그 관공서가 아주 발칵 뒤집어졌다고 한다.
전무후무한 실화다 보니 이게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 입을 거치면서 ‘대기업 회장님 미담 포맷’으로 둔갑해 인터넷에 퍼진 모양이다.
문득 예전에 웅진 윤석금 회장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사소한 약속을 쉽게 어기는 사람은 절대 큰일을 도모할 수 없다"고 했던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대기업 회장이든 대통령이든, 결국 본질은 같은 것 같다.
지위가 아무리 높아도 상대방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하는 것, 그리고 사소한 약속이라도 잊지 않고 지켜내는 신용의 가치 말이다.
내 수첩에는 어떤 사소한 메모들이 적혀 있는지,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소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인지 한 번쯤 돌아보게 되는 밤이다.
동시에, 현재 내가 발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는 이 도시에 대해서도 문득 묘한 생각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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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