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과적은 아님[1]
나훈아 " 홍시" 멋드러지게 부르시던
엄근진이셔서 학창시절 늘 주눅들게 하셨던
가족에게 사랑 표현 부족했던
그 시대 가부장적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가 옷걸이에 걸고 싶은 것은
양복 상의가 아니라
아버지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짐이다
아버지의 이마에 하나 둘
늘어나는 주름살은
열심히 살아가는 삶의 흔적이다
그 시대에도 지금도
아버지란 이름 무게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엄마와 아버지 모신 곳 와서
눈물 흘리는 엄마 가슴 찡해서
주저리 주저리 써 보네요
덧) 겉으로는 엄격하고 무서운 아버지셨지만
늘 자식들 잠자리 확인 후에 주무시고
저 결혼 전까지 늘 과일과 간식은 챙겨주신
6.25 외삼촌들 다 돌아가시고
울 엄마 홀로 외로이 커서 아버지와 결혼 후
많이 의지하시다가
말기암으로 아버지 돌아가신 후
매일 액자에 사진을 어루만지며
그리워하시네요 ㅠㅠ


댓글 25
저희 아버지는... 폭군 이셨슴다... 4살~8살까지의 기억이 잘 안나야 정상이지만 물고문...숨못쉬게 입과 코를 막고... 몽키로 머리를 칠려고 하고... 저수지낚시할때 낚시 받침대로쓰던 뽀족한걸로 차안에서 눈감아라..넌 이제 죽는거다 라고 했던 아버지셨슴니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사회생활하는데 문제가 많슴다... 무섭네요 아직도
저두 아버지를 존경 한다는 친구말 듣고 어찌나 부럽던지... 존경은 둘째 치고 아버지 같은 아버지 였으면 참 좋았을텐데.
제 선친, 광복 후 황해도에서 어머님과 결혼하시고 내려오셔서 한국전쟁 시 가족들이 폭격으로 모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이 남녘 땅에는 친가, 외가 친척이 거의 없음에도(가장 가까운 분이 9촌 큰아버지) 불구하고 저희 5남매를 위해 무진 고생을 하시고 올해로 돌아가신지 23년이 되었네요. 조금이라도 고향이 가까운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어머님과 같이 모셨고, 1년에 5번 이상은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이젠 나이가 들어가고 있어 누님들과 상의를 하여 아버님께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셨기에 호국원으로 모시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피해자이자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아부지는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셔서리.. ㅜㅜ
항상 마음속에 아버지가 웃고 계실거에요
그 시대의 피해자이자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아부지는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셔서리.. ㅜㅜ
토닥토닥~ 평안하게 잘 계실 거예여
폭력적이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가정의 아빠가 아닌, 일반적인 보통 가정의 아빠를 기준으로 보자믄, 뭐...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반려동물보다 서열이 낮은 존재로 있는게 대부분이주~ 그래도 맘속에 그들의 노고가 있음을 알기에 머리 큰 이후로 계속 부대껴보려고 하는데, 안하던걸 하니까 삐그덕거리게 되고 또 혼자서 계속 맞추려고 하다보니 지쳐버리게 되는건 어쩔 수 없나봐우~ 상대의 노력이 보이긴 하는데 내 성에 안차니, 더욱 좋게 볼 수 어려워지는 것도 있어우~
얘기 잘 나누고 오세요~~ 울 아버지도 말수는 적으셨지만 자상하신 분 너무 일찍 돌아가셨네요 ㅠ
제 선친, 광복 후 황해도에서 어머님과 결혼하시고 내려오셔서 한국전쟁 시 가족들이 폭격으로 모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이 남녘 땅에는 친가, 외가 친척이 거의 없음에도(가장 가까운 분이 9촌 큰아버지) 불구하고 저희 5남매를 위해 무진 고생을 하시고 올해로 돌아가신지 23년이 되었네요. 조금이라도 고향이 가까운 파주 동화경모공원에 어머님과 같이 모셨고, 1년에 5번 이상은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도 이젠 나이가 들어가고 있어 누님들과 상의를 하여 아버님께서 한국전쟁에 참전하셨기에 호국원으로 모시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원양어선 마도로스였던 아버지 항구에 정박할때마다 엽서를 보내주셨는데 그 엽서를 받을때마다 머나먼 나라 두루 다니시던 아버지가 부러웠던 기억이.... 트렌치코트가 마스코트였는데 그립습니다.
난....아버지가 평온한 가정이 그렇게 부럽더라
저두 아버지를 존경 한다는 친구말 듣고 어찌나 부럽던지... 존경은 둘째 치고 아버지 같은 아버지 였으면 참 좋았을텐데.
"텐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시던 전라도 양반... ㅡㅡ" 아버지 처럼만 안 살면 되겠다 다짐하여 나름 성공적?인 삶을 살고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폭군 이셨슴다... 4살~8살까지의 기억이 잘 안나야 정상이지만 물고문...숨못쉬게 입과 코를 막고... 몽키로 머리를 칠려고 하고... 저수지낚시할때 낚시 받침대로쓰던 뽀족한걸로 차안에서 눈감아라..넌 이제 죽는거다 라고 했던 아버지셨슴니다...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사회생활하는데 문제가 많슴다... 무섭네요 아직도
토닥... 토닥....
ㅠㅠ
댓글 달아주신 분들 옆에 붙은 ㅇㅇ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늘 행복하고 건강하시고 만사형통하시길 바랍니다♡
저희 아버지가 28살때 저를 낳으셨는데.... 제가 5살때인가 6살때인가...제 기억으로는 정이 없던 기억만 납니다. 지금은 제가 그때 아버지보다 한참 많은 40대인데...생각해보면 애는 있지 경제적으로 어렵지 집안에서 지원은 없었지 이해는 갑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아주 살맛 나셨네요 하는 사업 아버지가 50대때 많이 기울고 손놓고 기집질 하는거 제가 몇번 보고 해서 이거 사업 무너지면 집안 망한다는 생각으로 밤낮없이 일(지금은 인원수 그대로인데 매출액은 2배가까이 늘어남)하고 아버지는 일못하게 (도움이 안됨)하니 알아서 노는거 잘하시네요 (골프 무지 좋아함..어디 모임가서 대장놀이 하는거 좋아하심..) 긍데 울엄니는 밤낮없이 일하는제가 안타까워 저 매일 도와주십니다. ㅋㅋㅋ 이번 석가 탄신일 겹쳐서 무슨 템플 머시기 해서 3박4일인가 잘 놀러다님...
우리 아버지는 그냥 한량...참 답답했죠..그래서 엄마가 더 고생해서 우리 3남매 키우시고 지금도 일다니시고 10년전에 돌아가셧지만 참 눈물이 쉽게 안나오더라구요.. 평생을 편하게 놀고먹고 일이라고 해봐야 페인트공으로 몇일 일다녀오고 또 놀고 동네 아저씨들하고 고스톱치면서 술이나 마시고..에휴.....
3번의 이혼과 재혼 그 중 둘째는 공원에 버림 엄마가 달라 성인이 되어서야 사실을 알게됨 셋째는 그의 엄마가 데리고 감 넷째도 그의 엄마가 데리고 감 평생 부모 형제 친인척 고통을 줬던 사람 도박 유흥 거짓말 사기 나태함 폭력 5년전 사망함 고독사 할 줄 알았으나 착한 여자분 만나서 죽을때까지 편안하게 감 자식부터 형제 자매 까지 상속포기각서씀 사망후 성인이된 셋째 넷째는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됨 첫째인 나는 모든걸 목격하고 기억함 그리고 트라우마로 남음 내가 50이 되어 가지만 그인간의 도덕성과 개념은 이해가 되질 않음 나는 다행이 친할머니가 키워 줬었음 그인간 닮지 않기 위해 술 도박 유흥 절대 안함 나에게 아버지는 인간이 아니었음
와 나는 내 아버지가 제일 심하다고 생각했는데..
@1998오렌지군단 군단님 께서는 굴레 벗어나 성공 하신것 같네요 복 많이 받으세요^^
@1998오렌지군단 화장터에서 부친 유골함 버리던 사람 본 적있는데 이해가 되더라구요
평생 부모 형제 친인척 고통을 주던 사람.. 저희 아버지였죠.. 지금은 좀 달라졌습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감솨차장님~
김창옥 강사님이 그랬음.. 훌륭한 자식이 있는 집안은 아버지가 인상이 정말 좋으시거나 아니면 안 계시다고 ㅎㅎ
우리 아빠요? 한가지는 확실했어요. 절대 꺽이지 않았어요. 불의에 꺽이지 않았어요. 돌아가시고 나서 들은 이야기지만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정말 따뜻하셨다고...... 나한테는 그닥 안 따뜻했는데.....
내아빠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의 댓글에 반대는 뭐지?
돈버는 능력도 그닥.. 집안 돌보는 능력도 별로였지만.. 굴곡많은 인생여정 나름 열심히 살다가셨네요.. 49제날..참석못한 내꿈에 오셔서 웃는얼굴로 이런저런 얘기나누고 구름위로 떠나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