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찍 뉴재명 애들이 타겟 전환한거 보니[2]
당시 결혼 축의금은 보통 2만원 친하면 5만원 내던 시절이다.
피로연 식대는 1인당 12,000 정도였다.
갈비탕과 잡채,홍어무침과 밑반찬 그리고 술과 음료
대기업 사원 4년차 내 연봉은 1,350 정도였고
1990년 12월1일 결혼 한달후 대리 진급하니
연봉이 2천만원이 되었다.
맞벌이라서 충분히 자력으로 신혼집 얻을수 있었지만
어머니와 형수는 우리를 곁에 두길 원했다.
신혼집은 전세 3,500만원 20평대 아파트에서 시작했다.
큰 평수에 어머니와 큰집이 살아서 어머니와 형수 주장으로
같은 단지 어머니 돈 100%로 벗아날수 없었다.
1년후 주택조합이 완공되어 현대아파트로 이사했는데
하필이면 어머니 약국 길 하나 건너편이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우리집에 2,3일, 큰집에 4,5일 사셨다.
3편으로 이어집니다.


댓글 4
그냥 바로 쓰삼
90~91년 당시 2천이면 가락시영 쪼그만 @(지금의 헬리오시티)를 살 수 있었고 개포주공 쪼그만 @(디에이 퍼스티어 아이파크)도 조금 더 보태면 살 수 있었네요 ㅎㅎ
그러개요. 그때 무조건 잠실갔어야 했는데 회사가 광화문이라.....
당시 보라매 공군회관 피로연 식대도 1인당 12,000~15,000이었던 거 같네요 ㅎㅎ 축의금 만원 내는 이들도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