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에서 흔히 보는 광경[3]
제가 이 일을 하면서 자주 인용하는 성경구절들이 몇개 있습니다 그리고 찬송가 가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찬송가 가사들도 있습니다
하박국에 있는 말씀 제가 너무 좋아해서 설교때마다 자주 인용합니다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외양간에 소가 없어도 우리에 양이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리로다"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참 제 신앙의 확신이 되는 골자가 되는 귀한 말씀중의 하나입니다
또 찬송중에 제가 좋아하는 찬송이 많아서 자주 인용을 합니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 예수 오신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같던지 큰 풍파로 무섭고 두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어디든지 예수 나를 이끌면 어디든지 예수 함께 가려네
예수 함께 아니가면 낙없고 예수 함께 동행하면 겁없네
어디를 가던지 겁낼것 없네 어디든지 예수 함께 가려네!"
너무 귀한 찬송입니다
이 말씀과 찬송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뭔가하면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밤낮 무화과 나무에 밤낮 무화가 열매가 가득가득 맺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밤낮 궁궐에서만 사는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높은 산에 살수도 있고 초막에 살수도 있고 거친 들에도 살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이 늘 순탄한 강같지만 않다는 것입니다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려울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를 갈수도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어디는 좋지 않은곳 힘든곳 나쁜곳도 갈수 있는데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다 관계 없다는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있으면 좋겠지만 궁궐에 살면 좋지만 좋은 곳으로 가면 좋지만 내 삶이 순탄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자기들은 크게 관계 없다는 것입니다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있으면 좋겠지만 궁궐에 살면 좋지만 좋은곳으로 가면 좋지만 내 삶이 순탄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자기들은 크게 관계 없다는 것입니다
왜요?
"사슴과 같이 높은 곳을 다니게 하실리로다"
그 차원을 넘어서 한차원을 뛰어 넘었기 때문에 얻으면 좋고 없으면 괜잖고 그것입니다 부한데도 처할줄 알고 비천한데도 처할줄 알고 자족하기를 배웠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한 삶을 사는것 아니겠습니까
이게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미신적인 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신적인 종교가 구하고 하는 목적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환경과 형편과 팔자를 고치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형편과 어떤 처지에서도 살수 있는 능력 관심없습니다 늘 궁궐에 살아야 되고 늘 순탄한 평탄한 삶을 살아야 되고 꼭 좋은 곳으로만 가야되고 그것을 목적을 하는데 기독교 신앙은 그런면에서 미신적인 종교와 차원이 다릅니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놀라운 삶의 능력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
좋은 환경에서만 살게되면 여러분 그때만 기뻐할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우리는 괴로워하고 힘든 삶을 삽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뛰어넘으면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괜찮습니다
건강하고 좋지만 병들어도 상관없습니다 그냥 그것을 뛰어 넘을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형편과 처지와 환경에도 불구하고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하는 구원 하나님나라 천국의 삶을 살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의 오늘 본문 말씀에 바울과 실라가 전도 하다가 옥에 갇혔다 매를 맞았습니다
그때 매는 참 잔인한 매입니다 매맞고 옥에 갖혔습니다 발에 차고를 채웠습니다 쉽게 풀려 나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죄수들과 간수들이 바울과 실라가 억울하게 잡혔다는것 다 압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예상 했을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미쳐서 길길이 뛸것이다 분해서 화가나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심지어는 하나님까지도 원망하는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지도 않고 이런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십니다!"
이런 말이 나올줄 알았는데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그런말이 없었습니다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것 만으로 놀라운데 저들이 찬송햇다 그랬습니다 깊은 옥중에서 찬송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그곳에 갇혀있는 죄수들과 간수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미치지 않고서는 그럴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아마 미쳤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 너무 화가나서 미친건가 보다 어떻게 저기서 찬송을 부르냐!"
찬송을 했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그사건이 미쳐서 그런게 아니라는것으 대번 알수 있습니다 어떻게 저럴수 있었을까
그다음에 지진이 큰 지진이 났습니다 그래서 옥터가 움직였고 죄수들의 차고가 다 풀려 났습니다 간수들은 죄수들이 다 도망간줄 알고 바울과 실라가 도망간줄 알고 자결할려고 그랬습니다
그럴때 바울과 실라가
" 그렇게 하지 말아라! 우리 여기 있다!"
그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여러분 차고가 풀렸으면 도망가면 됩니다 아마 바울과 실라는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도망가면 간수들이 어려움을 당할 것이다!"
그러니까 간수들 때문에 도망가지 않고 그냥 있었습니다
그런 모든 일들이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냐? 어떻게 이렇게 살수가 있는가 삶에 큰 충격을 주었을것입니다
그래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수 있습니까?"
그말의 뜻이 뭔지 아세요?
" 어떡하면 우리도 당신처럼 살수 있습니까?"
바울과 실라처럼 사는것을 구원이라고 이야기 한것입니다
억울한일 당하지 않고 매맞지 않고 고생하지 않고 가난하지 않고 이런것만이 구원이 아닙니다
부하던지 가난하던지 매맞던지 건강하던지 상관없이 항상 그것을 이겨내는 삶 삶의 능력 그것을 구원이라고 아마 생각했을 것입니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나도 당신처럼 살고 싶다 나도 당신처럼 살고 싶다 그렇게 살수 있는 삶의 근거가 뭐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바울과 실라가
"주 예수를 믿어라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래서 그날밤의 간수가 자기와 온가족이 다 세례를 받고 구원얻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
우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 어떻게 하면 나도 당신처럼 살수 있을까요? "
그렇게 물어올수 있는 삶을 산다면 그게 얼마나 근사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면 그때 주예수를 믿어라 한마디만 해도 복음의 전도가 확실하게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제가 암에 걸렸을때 당연히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왜 저라고 없었겠습니까 그리고 왜 저라고
"하나님 잘 치료되게 해주세요 완치되게 해주세요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완치되게 해주세요"
하는 기도 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말 암에 걸렸을때 가장 욕심내고 바라고 기도 많이 했던 것은 암에서 낫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낫는것을 바라죠 그런데 안나을수도 있습니다 저도 암때문에 죽을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은 다른 사람은 나하고 달라서 그러겠습니까 만에 하나 하나님이 그렇게 아니하실지라도 제가 바라는 것은 뭔가 하면 암에 걸렸어도 보통 암에 걸린 사람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짜증 부리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쩔쩔 매지 않고 초연하게 담담하게 그 죽음과 고통을 잘 이겨내고 너그럽고 또 기뻐하고 감사하고 초연하게 그런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난뭐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 손주들이 있는데
"야! 우리 아버지 정말 예수 잘 믿는다 우리 할아버지 정말 고생많이 하셨는데 참 믿음이 근사하구나!"
그렇게 되면 우리 아들과 손주들이 며느리들이 정말 예수 믿는 그 일이 잘 전달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우리 암환자들을 위한 집회를 할때 내 백성을 위로 하라는 집회를 할때 첫번째 집회의 제목이
"믿음의 가오"
그렇게 했었습니다
"우리가 암에 걸렸지 가오가 없냐?"
어느 영화 대사에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하는 유명한 대사가 있었습니다 그거 차용해서
"우리가 암에는 걸렸다 그렇지만 가오는 지키자
예수 믿는 믿음의 가오는 지키자!"
그렇게 됐으면 여러분 이 고난을 통해서도 우리가 정말 바울과 실라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의 능력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가치 그 핵심 가치를 잘 전달할수 있는 삶을 살수 있지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이일을 하고 암에 관련된 집회도 하고 암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적으로 더 덤벼들었지요
하나님 은혜로 지금 암으로 죽지 않고 잘 버티고 살아 있는것도 감사하지만 여러분 그런 자세로 살기 때문에 제가 더 많은 일을 할수 있는 기회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가요즘 엉뚱한 소리하고 다니지 않습니까?
"암도 은사인가보다!"
이게 농담이 아니고 장난이 아닙니다 암에 걸렸지만 기도하고 암에 걸렸어도 찬송할수 있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당당하게 초연하게 불안하지 않게 남은 삶 더 열심히 잘 살려고 뷰티풀엔딩 이야기 하면서 사는 삶을 살때 그것이 복음의 능력 아니겠습니까 ?
"어떻게 저렇게 살수 있는가?"
라고 하는 것을 할수 있을때
우리는 꼭 성공해야만 출세해야만 암에 걸리지 않아야만 여러분 큰일을 하고 그럴수 있는것 같지만 건강해도 주를 위하여 살수 있고 병들어도 주를 위하여 살수 있습니다
여러분 !
성공해도 주를 위하여 살수 있고 실패와 고난중에도 주를 위하여 살수 있습니다
여러분!
부한데 처할줄 알면 부한데도 부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됨을 기독교 신앙의 우월함을 우리 하나님의 위대함을 증거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난해도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형편과 처지에 있던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그것을 뛰어 넘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줍니다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능력인 것을 전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라고 간수가 물었을때
"주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해서 옥중에 바울과 실라가 갇힘으로 간수와 온가족들 이 세례를 받고 구원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말씀 마치려고 합니다
예수 믿는다고 다 부자되나요? 예수 믿는다고 가난하지는 않아요?
가난할수도 있습니다 병들수도 있습니다 실패할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은 가난하지 않는것 병들지 않는것 실패하지 않는것 고생해 않는것 그것이 아닙니다
설령 그런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에 지배당하지 않고 패스오버! 뛰어넘을 능력이 있습니다 부요함도 뛰어넘습니다 부요함을 뛰어넘는게 뭔줄 아세요?
자기 욕심만 부리지 않는 것입니다 교만하지 않는 것입니다
건방지지 않는 것입니다 남 깔보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다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게 부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가난을 뛰어넘는게 뭔줄 아세요? 비굴하지 않는 것입니다 원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난한데도 잘 사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부할수도 있고 가난할수도 있고 좋을때도 있고 나쁠때도 있고 건강할때도 있고 병들때도 있지만 언제든지 우리는 잘 살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부자가 되게 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잘 살게 하는 능력인줄 믿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옥에 갇혔지만 가장 불행한 삶에 처해져 있었지만 그것을 통해서도 가장 잘사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어서 간수에게까지 감동을 주고 구원을 얻게 하는 삶을 살았는데 여러분들도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잘 살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도 어떻게 하여 당신처럼 잘 살수 있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고 살아갈수 있는 바울과 실라같은 여러분 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중에서>
< 오늘 본문 성경말씀>
16장 25절-32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소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사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메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간수가 등불으로달라고 하며 뛰어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사람과 그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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