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의 차

김삿갓 유적지를 오래간만에 들렀습니다

매년은 못 가보고 2~3년에 한번씩은 꼭 들러보는데 

이번 기회에 사진도 찍고 올려봅니다.

이분 연대기는 대략 1800년대 생애입니다.

즉, 200년 전의 인물이니 그렇게 멀고 먼 시대의 인물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조부, 조모님들도 1900년대 초에 태어나신 분들이 많을겁니다.

관련 사건은 홍경래의 난이고요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대단히 똑똑했던 분이고 과거시험에 장원급제하였는데 글의 내용이 자신의 조부( 당시 부사라는 벼슬이었으니 지방의 "시장" 정도 됩니다.)를 공격한 내용이었죠.

김삿갓은 그 분이 자신의 조부인 줄도 몰랐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고 자신의 출세의 시작이 조상님을 욕보인 것이었다는 사실에 자책과 통한의 눈물을 삼키며 처자식이 딸려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떠돌이 생활을 했죠

김삿갓의 조부는 홍경래에게 투항했다는 이유로 반역자로 몰렸고 조정에서는 삼족을 멸하라는 어명이 내려졌고 손자 김삿갓, 그의 형, 그리고 어머니 이렇게 3명은 겨우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당시 세도가는 안동 김씨였고 김삿갓은 안동 김씨 집안 사람) 강원도 영월, 그 영월에서도 태백산맥 자락으로 숨어지내야 했습니다. 생가가 있는데 정말 산속에 있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목숨을 부지했는지 참 대단합니다. 여기는 한여룸에도 아침 기온이 1~3도는 될듯합니다.

김삿갓은 말년에 전라도 화순땅에서 생을 마감하였는데, 그의 아들이  나중에 생가 근처로 시신을 이장을 하니 여기가 김삿갓의 묘가 있는 자리 입니다.

 

김삿갓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이 분이 대단히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지만

당대를 풍자하는 "비평"이 우리 맘에 크게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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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는 이게 없었는데 근래 이게 설치가 되어서 이 분의 생애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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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가 쪽으로 가려고 했으나 올라가는데 30분 내려오는데 30분 정도 걸릴거 같아서 시간 관계상 올라가질 않았습니다. 우리가 보아오던 조선시대 볏집으로 지붕을 만든 초가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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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지에는 유적지 외에 사유지가 있습니다. 여긴 사유지라서 올라가면 안되겠죠.

신기하네요, 이 산속에 벌써 누군가가 사유지를 아주 예전부터 매입해서 집을 지어놧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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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지는 산속임에도 불구하고 남향이고 햇볕이 잘 들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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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삿갓이 어느날 개성의 어느 여염집에 거처를 부탁했는데

매몰차게 문전박대를 당합니다.

그리하여 김삿갓이  남긴 시가

 

邑號開城何閉門읍호개성하폐문  
山名松嶽豈無薪산명송악개무신          
黃昏逐客非人事황혼축객비인사  
禮義東方子獨秦예의동방자독진

고을 이름이 개성인데 왜 문을 닫나
산 이름이 송악인데 어찌 땔나무가 없으랴.
황혼에 나그네 쫓는 일이 사람 도리 아니니
동방예의지국에서 자네 혼자 되놈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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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치프턴

삿갓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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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좋아

계곡가서 놀기만했지 이런곳은 첨 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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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부처님

영월 읍내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김삿갓이 어릴 때 영월읍에서 시행하는 백일장에 응시하여 자기 할아버지를 꾸짖는 내용의 시를 써서 장원을 했다는데 당시에 자동차가 있는것도 아니고 걸어서 갔을텐데 그 먼거리를 어떻게 걸어갔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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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위너

집에서 영월 읍내까지 차로 가도 30분 정도 가야될 정도로 먼거리지요. 걸어서는 하루 종일 걸어야 하고요 아마도 하루 종일 걷고 거기서 하루 묵고 시험을 봤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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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의 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