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알고 지낸 중학교 동창 친구가 있습니다.
서로 왕래도 많았고, 친구 부모님도 저를 예뻐해 주셨고, 친구 여동생도 제가 많이 챙기며 지냈습니다.
그만큼 저에게는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오랜 시간 마음을 나눈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결혼한 이후, 지난 9년 동안 얼굴을 본 건 사실상 두 번뿐입니다.
한 번은 제 아들 돌 때, 친구가 잠깐 들러 축하금만 전해주고 간 적이 있었고,
또 한 번은 제가 너무 보고 싶어서 2시간 거리임에도 제 가족을 데리고 친구 작업장까지 직접 찾아가 인사하고 내려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친구 아내가 저를 불편해하거나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결혼 전 더블데이트 때도, 결혼식 때도 제가 먼저 인사했지만 반응이 너무 차갑고 어색했습니다.
처음엔 제 착각일 수도 있다고 넘겼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느낌은 확신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괜히 친구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원래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 모임에서도 자연스럽게 한 발 물러났습니다.
다들 부부 동반으로 만나는데, 저만 연락이 없었고,
저 역시 굳이 불편한 자리에 끼고 싶지 않아 조용히 빠져 있었습니다.
사실 친구의 결혼생활 방식 자체를 제가 평가할 일은 아닙니다.
친구 삶은 친구 삶이니까요.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며 계속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있었습니다.
친구는 결혼 후 축구, 게임 같은 취미생활도 사실상 다 접었고,
외벌이로 일하면서도 늘 가정에 맞춰 살아왔습니다.
반면 친구 아내는 어린이집 교사 자격이 있음에도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고,
가게 카운터도 어느 순간 친구 어머님이 보고 계셨습니다.
여기까지만이라면 그냥 “남의 가정사”로 넘겼을 겁니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가 코인으로 2억 가까운 손실을 보고
2금융, 3금융 대출까지 생겼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연락해왔습니다.
한 달 이자만 300만 원이라고 했고, 양가 부모님도 상황을 다 알고 있으며
친정 쪽에서도 대환대출을 도와주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바로 250만 원을 송금해줬습니다.
솔직히 더 못 해준 게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친구는 한 달 뒤 갚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상환 이야기는 없습니다.
사실 돈을 안 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그만큼 친구를 오래 봤고,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첫째 아이는 미술학원, 태권도학원을 다니고 있고,
가족은 레고랜드 호텔까지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남편이 큰 잘못을 했더라도, 가정이 정말 위기 상황이라면
최소한 소비와 생활은 한동안 줄여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화가 났던 건 친구의 생활이었습니다.
친구는 죄책감 때문에 아침 8시에 집을 나와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고,
저녁 7시까지 일한 뒤 퇴근해서 첫째를 픽업하고,
집에 가서 집안일과 육아를 하고, 아이를 재운 다음
다시 출근해 새벽 4시까지 일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었더니,
“애가 아빠만 찾으니까 재우고 나가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솔직히 너무 화가 났습니다.
저건 부부가 함께 위기를 버티는 모습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만 죄책감과 책임을 몰아넣고 있는 구조처럼 보였습니다.
친구가 잘못한 건 맞습니다.
큰돈을 그렇게 날린 건 분명 본인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대가를 친구 혼자 인간답지 않게 감당하게 만드는 게 과연 맞는 건가 싶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친구와 오랜만에 몇 시간 통화를 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생각해보니 네 아들도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좀 그렇다”
라고 했더니, 친구가 보자고 하더군요.
그러다 오늘 제가 시간 되냐고 물었더니,
“오늘 친정 가는 날이라 아내 내려주고 첫째 데리고 밤 9시에 가겠다”
“아침에 갈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 또 바뀌었습니다.
그 순간 확실히 느꼈습니다.
아, 나는 이 관계에서 늘 후순위였구나.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한 건 나였고, 친구는 늘 상황에 끌려다니기만 했구나.
물론 친구 아내가 저를 싫어하는 건 자유입니다.
저도 모든 사람과 잘 맞을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불편함 때문에 9년 동안 친구를 제대로 한 번 만나지 못했고,
이제 와서 돈 문제로 다시 연결되는 상황은 솔직히 너무 씁쓸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생각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제 돈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떤 방식으로 갚을 수 있는지 분명하게 확인하고,
그 이후에는 예전처럼 마음 쓰거나 기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9년 동안 연락 없이 지낸 시간보다 더 멀어질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저도 제 마음을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친구가 불쌍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이 안쓰럽습니다.
하지만 안쓰럽다고 해서,
내 시간, 내 감정, 내 돈, 내 관계 감각까지 계속 소모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도와주는 것과 끌려가는 것을 구분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관계도, 여기까지가 맞는 것 같습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돈은 아니지만, 그 돈이 있다면 차라리 제 가족에게 좋은 것 하나 더 해주는 게 더 맞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적어도 지금의 모습만 놓고 보면, 제 돈이 그 가정에 들어가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돈만 정리되면, 저도 이 관계를 제 마음속에서 조용히 정리하려고 합니다.


댓글 1
친구분의 생활을 보니 그 250만원도 결국 아내의 허락을 받아야만 갚을 수 있을듯 한데요. 지들 대출을 모두 상환할 때까지 친구분의 돈도 후순위로 밀릴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가족 외 지인과의 돈거래는 절대 안 하시는게 좋습니다. 결국 돈도 잃고 사람도 잃거나, 돈은 받아내지만 사람은 잃게 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