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27권, 25년 6월 28일 4번째 기사]
진해 고성은 전일에 파선이 되어 육지로 올라온 왜적 40여명이 고을 경내에 출현하자 진해 현감은 먼저 도망하였습니다.(...)
진해에 적이 들어온 뒤에는 배반한 백성들이 사방에서 일어나 현령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더욱 원망하여 배반하므로 현령은 수사와 일시에 바다로 나갔는데,
이 때 적이 이미 입성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분탕질하므로 현령이 도망하였습니다.
[선조 27권, 25년 6월 28일 4번째기사]
-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의 경상도 지역 상황 보고
왜국은 정수나 요역이 없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이미 그들을 좋아하고 있는데
왜적이 또 민간에 명을 내려 회유(誨誘)하니
어리석은 백성들이 모두 왜적의 말을 믿어
항복하면 반드시 살고 싸우면 반드시 죽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연해의 무지한 백성들이 모두 머리를 깎고 의복도 바꾸어 입고서
왜적을 따라 곳곳에서 도적질하는데 왜적은 몇 명 안되고 절반이 배반한 백성들이니 매우 한심합니다
[선조 38권, 26년 5월 21일 2번째 기사]
김해에는 촌민들이 모두 왜적에게 부역하여
영남의 크고 작은 도로에 모두 향도가 되어 있고,
향리인 김변호와 서자인 배인 등은 왜적의 장수가 되어
매번 분탕질할 때마다 반드시 앞잡이가 되니,
적중에 머물고 있는 백성들은 이들의 소행을 보고는 모두 왜복을 입고,
다시 도망쳐 나오려는 뜻이 없다고 합니다.
[선조 82권, 29년 11월 1일 2번째 기사]
영남은 버려진 땅.
영남은 병화가 있고 나서부터 버려진 땅이 되었으므로 모든 세금과 부역에 관한 일은 오로지 호남에 요구하니,
인심을 잃는 것은 오로지 이 때문입니다.
[선조 62권, 28년 3월 1일 8번째 기사]
- 도원수 권율의 장계
왜적을 위하여 농사를 지어 조세를 바치고 그들의 노역에 이바지하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며 세월이 갈수록 거의 그들과 동화하여 서로간의 관계를 잊고 있습니다.
전해 들으니, 동래 부산 김해 등지에는 밭가는 자들이 들녘에 가득한데
3분의 2가 모두 우리나라 백성들이며 그들 중에는 이따금 머리를 깎고 이를 물들이는 등
그들의 풍속을 따른 자들도 있다고 하고...
이보다 더 한심한 일이 없습니다.
[난중잡록 1권 임진년 상]
왜적이 가는 곳마다 무인지경에 들어가듯 하여 마침내 영남 한 도를 왜적의
굴혈로 만들었고...왜적이 오기도 전에 군사와 백성이 앞장서서 달아나
산림 속에 잠복하고는 구차스럽게 살아남을 계획이나 함으로써...
[난중잡록 1권 임진년 상]
전라도 도순찰사를 시켜 도내의 부로와 군민들에게 유시하다.
영남의 산천은 깡그리 승냥이와 범같은 왜적의 굴혈이 되었고,
호서의 초목은 반이나 개나 양같이 천한 왜적의 비린내로 물들었다.
[난중잡록 1권 임진년 상]
김해 동래 등지의 사람들은 다 왜적에 붙어서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며 여인을 더럽히고 하였는데 왜적보다 심하였다.
김해의 경우에 도요저 마을은 낙동강 연변의 큰 고장인데,
왜란 초기부터 왜적에 붙어서 도적질을 하고
혹은 지난날의 원수를 갚기도 했다.
한 서원은 일본에 들어가서 전세를 마련하느라고
혹 뱀을 잡아다가 그 세미에 충당하기도 했으니,
왜인이 천성으로 뱀 먹기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댓글 2
역시 경상도는 독립을 시키자...
나라버리고 도망간 선조는 한양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