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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상 가장 평화로웠던 통일

5대 10국 시대는 당나라가 멸망한 10세기 초부터 송나라가

통일하는 10세기 중반 53년간의 기록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5호16국 시대보다 600년뒤 역사이다.


5대국은 주전충의 후량, 이존욱의 후당, 석경당의 후진

유지원의 후한 그리고 곽위의 후주이다.

여기서 주목할 인물은 후주의 곽위의 양자 2대 황제 시영과

시영의 부하였던 조광윤 그리고 오월국의 전홍숙이다.


시영 :  921년생 곽위의 양자로 곽위 친자들이 전쟁에 죽어 자연스럽게 

   계승했다지만 곽위가 친아들보다 인정한 능력자이다. 나중에 본성 시씨로 환원한다.

조광윤 :  927년생 명실상부 시영의 오른팔이고 시영이 제위에

         오르자 전군 군권을 조광윤에게 맡긴다.

전홍숙 :  929년생 오월국의 마지막 군왕이지만 성군이며

         후대에 중국 역사상 최고의 군왕이자 제후로 꼽힌다.


시영의 후주는 전국통일 가능성 0순위였다.

그러나 시영은 요나라 친정을 하고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37살 젊은 나이에

요절을 하니 7살 어린 아들이 승계를 하지만 결국 전성기로 돌아갈 힘이 없었다.

시영은 32살에 즉위하고 목표가 뚜렷했다.

20년만 살수 있게 해주면 첫 10년은 가장 강성한 나라로 만들고

나중 10년은 전국 통일하여 태펑천하를 만들어 여한없이 죽고 싶다.

재위 불과 5년만에 최강의 나라를 만들고 한족들이 빼앗긴

영토를 요나라 거란에서 빼앗고 돌아오는 길에 요절했으니

역사가들은 그에게 5년의 시간만 더 있었으면 통일이 되었을거라 주장한다.


조광윤은 황제 시영에 이어 어린 황제를 보필한다.

그러다 친동생 조광의와 부하들에게 속아서 사고를 치게 된다.

평소 술자리를 즐기던 조광윤을 인사불성 만들어 재워 놓고

동생과 부하들이 정변을 일으킨거다.

잠에서 깬 조광윤은 어린 황제에게 나아가 용서를 빌고 처벌을

받으려 했으나 이미 동생과 부하들이 판을 다 만들어 놓아서

어린 황제가 조광윤에게 선위하게 된다.

그렇게 송나라가 탄생하게 된다.

시씨 집안은 그후로도 황족으로 대우받으며 몽고 원나라에

남송이 멸망할때까지 조씨들과 전쟁과 운명을 같이 했다.


조광윤은 전투없이 열국들의 항복을 받고 90% 정도 통일된 즈음 급사한다.

동생 조광의가 2대 황제가 되고 신하국 오월국 군왕 전홍숙과 함께

남당국을 정복하고 전홍숙이 스스로 오월국을 받침으로 통일이 완성된다.

역사학자들이 전홍숙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이렇다.

1. 치세에 오월국은 태평성세였고

2. 전국 정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스스로 물러나고

3. 송나라가 거의 전쟁없이 통일을 이루는데 1등 공신이며

4. 백성의 안위와 민생을 최우선한 군주였기 때문이다.


위 3사람은 동시대 대선배 풍도 영공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풍도는 "무는 혼란을 잠재우지 못하고, 문은 태평성세를 만들지 못한다."

거꾸로 된 말 같지만 곱씹어 보면 수긍이 가는 말이다.

문무가 필요없을 수도 필요할수도 있는거다.

그만큼 문과 무의 균형이 중요하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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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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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으로만든두부

모든게 물밥 먹듯 쉬운게 아냐..... 몇일 공부하고 그나마 요약한거야.

-2
급하면어제나오던가

'이쁜곰팡이 26.03.20 18:14 한줄요약좀' 한 줄 요약... 짱깨는 왜와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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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으로만든두부

후주, 오월국은 이시대 후백제와 고려랑 관련이 많습니다. 과거제 교과서에 나오는 쌍기는 후주 사람이고 션훤은 오월국 국왕에게 책봉과 무역 허가 받았다는 문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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