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에 모든 것을 맡기면 안 된다.
공교육은 그저 정부가 정한 내용을 가르치는 것,
고만고만한 수준의 부품이 될 국민을 길러내는 것,
부모가 직장생활 할 동안, 애들 잡아놓고 이상한 짓, 탈선, 범죄 못하게 붙잡아두는 것,
이 이상의 의미가 없다. 교사는 월급을 받고 정해진 내용을 설명하는 사람이지, 남의 자식을 아끼고 사랑해야 할 의무가 없다.
학교에 큰 기대를 하면 안된다. 학교는 국가, 정부에서 합의하고 정한 어떤 내용을 알리는 기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 자식은 내 자식이지, 학교가 내 자식을 반드시 사랑으로 품어주고 보듬어야 될 의무가 없다.
공교육이 요구하는 그저 정부가 정한 내용 학습, 고만고만한 수준의 학생
이 2가지 조건에 도달 못하거나, 일탈하는 학생을 교사가 (감정적으로 인격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교사 입장에서는 피곤하고 짜증난다. 자기가 감당, 케어하기 힘드니까.
x세대, mz세대 같이 개인주의화된 세대가 교사가 되었다.
그런 뭔가 어떤 선, 기준에서 벗어난 학생들에대한 교사의 거부감은 강해질 것이다.
(이상한, 드센 학부모들이 민원 넣고 시비거는 것과 상관 없이, 교사 개인이 학생을 바라보는 태도, 학생을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미 개인주의 영향을 받은 세대가 이미 기성세대가 되고, 중년이 됐는데, 예전처럼 어떤 책임감, 사명감, 충성심을 기대하는건 너무 헛된 기대다. 교사 뿐만이 아니다. 다른 어떤 직업에게도 그런 것을 강요하면 안된다.
사람 성격은 쉽게 바귀거나 변하지 않으며, 잘 숨기는 재주, 포장하는 재주가 늘어간다. 인간의 가치관도 마찬가지.
그리고 교사 또한 애초에 월급 받는 노동자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 중세 그리스도교 선교자들, 고려, 조선의 유교 성리학자들 같이 어떤 이념 철학을 가진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학교에서 생활의 기본이 되는 기초지식을 가르친다는 생각 조차도 순진한 생각이다.
눈치, 요령(분위기 따라 적당히 움직이기), 순발력, 처세술, 그리고 사내정치(파벌, 뒷담화, 무리짓기) 이런 것은 학교가 가르치지 않는다. 교과서에 없다.
정말 뭔가를 배우고 싶다면, 내돈 써서, 학원 보내는 것 밖에 없다. 그리고 주변에 최대한 말하지 않는게 좋다. 누군가의 시기심, 질투심의 방해를 피하고 싶다면.
시간과 돈을 투자된 인간과 투자받지 못한 인간의 차이. 외모, 머리 속 지식, 쓰는 단어에서 나타난다.
시간과 돈이 꾸준히 투자된 인간(다듬어진 인간)과 투자받지 못한 인간의 수준 차이는 점점 벌어진다. 2010년대 기준 한 1~2세대 정도는 진행된 상태.
일단 시간, 돈을 투자받고 자란 인간일수록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덜 하게 된다. 호승심, 객기, 절제력에도 영향을 준다.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 점점 어떤 삶의 목표의식을 가진 인간, 그냥 대충 적당히 사는 인간. 이렇게 가치관, 생각의 차이로도 발전한다.
수준 차이가 곧 문화 차이, 가치관 차이가 되고 그게 1세대 이상 지나면, 차이에서 격차로 발전한다.
수저는 물고 태어난다? 알아서 잘 살아간다? 과연 그럴까?
내가 뭔가를 하고 싶다면 내 시간, 내 돈을 투자해야 된다. 어쩔수 없다.
공짜로 뭔가를 누리고 싶은 마음이 갈등, 트러블을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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