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나온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다"라는 말 한마디.
이 말은 몇 년째 문재인을 비난하고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괴물을 발탁했고, 처치하려는 노력을 일절 안 했으며,
심지어 비호해서 나라를 망쳤다'는 주장의 근거로 쓰인다.
그 후로 민주당에 무슨 일만 터지면 원인은 기승전 문재인이다.
요즘 시끄러운 합당 문제에도 역시나 문재인이라는 이름은 심심찮게 소환된다.
심지어 내란이 일어났을 때도
'문재인 때문'이라는 식의 댓글도 많았다.
잘못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비판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비판과 억지는 다르다.
맥락 없이 또 시작되어 버린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시즌 2를 보고 있자니 아주 역겨워 죽겠다.
얼마나 억지를 부리고 있는지 당시 상황을 복기해 보자.
먼저 묻자.
그런 놈을 강골 검사라 추켜세우고,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시대의 명언인 양
떠받들었던 건 누구였나.
심지어 2017년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조차 1호 공약으로
"윤석열 검사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만큼 윤석열은 당시 우리 진영 모두가 열광했던 상징이었다.
그래서 정권 초기 문무일이 검찰총장으로 지명되었을 때
윤석열이 아닌 것에 실망했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윤석열의 거짓말을 지적했던 뉴스타파를 기레기로 몰아세우며
엄호했던 건 또 누구였나.
그때 윤석열을 지켰던 사람들과
지금 문재인을 욕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인가?
속인 놈은 윤석열이다.
비난의 화살은 윤석열로 향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속인 놈만큼 속은 문재인도 문제라고 우길 거라면,
본인들 눈부터 찔러야 이치에 맞는 것 아닌가?
1. 인사로 단행한 숙청
추미애는 취임하고 6일 만에 정기 인사보다 한 달이나 앞당겨
윤석열 사단 고위직 32명에 대한 인사발령을 내린다.
그들은 대통령 결재가 필수인 검찰 고위직이었다.
대통령은 인사권은 대통령과 장관에게 있다고 못 박으며
윤석열의 반발을 검찰총장의 월권으로 규정해 버렸다.
그 후 대검 중간 간부 전원을 유임시켜 달라는 윤석열의 말을 무시하고
또 한 번의 인사를 했다.
당시 야당과 언론은 숙청을 했다고 난리 쳤고,
보는 우리는 통쾌했던 그 일을 왜 깨끗하게 지워 버린 걸까.
2. 두 번이나 발동됐던 수사지휘권의 의미
역대 정부에서 딱 한 번 행사됐던 수사지휘권을 두 번이나 행사했다.
심지어 두 번 다 윤석열 관련 사건이었고, 내용은 수사 배제였다.
이례적인 수사지휘권 행사에 대해
청와대는 공식적으로 불가피하다 판단된다는 입장을 밝히며 힘을 실어줬다.
윤석열에게는 치욕 그 자체였을 것이다.
수사지휘권 발동 직후 총장이 사퇴했던 전례가 있었고,
대통령이나 장관과 갈등이 있을 때마다 사퇴하는 것은
검찰총장들의 행동 공식이었다.
수사지휘권 발동은 한마디로 '이제 그만 기어나가라'는 말이었다.
3.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검찰총장의 임기는 법으로 정해져 있어서 대통령이 임의로 해임할 수 없다.
그건 윤석열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징계라는 수단을 쓴 것이다.
형식은 정직이었지만 내용은 해임 통보였다.
일개 검사도 징계성 발령에 사표를 쓰는 조직에서,
총장이라는 사람이 징계를 받고도 사퇴를 하지 않고
가처분 소송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받아줬다.
그렇게 일이 꼬여버린 것이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있었음에도 문재인이 윤석열을 보고만 있었다고 하는 것이 맞나?
4.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발언이 나온 시점
윤석열은 가처분 소송에서 이긴 후 '문재인에게 탄압받는 투사'
이미지를 쌓고 있었다.
문재인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던 반대 진영 사람들은
문재인과 대척점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윤석열에 대한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 시점에 윤석열에게 '문재인의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린 것이다.
윤석열이 공들여 그린 그림에 붓질 한 번으로 먹칠을 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왜 문재인 정부의 총장이라는 말만 기억하나?
"총장이 정치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윤석열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네가 정치를 할 수 있을 것 같냐" 하는 것이었고,
국민들에게도 윤석열의 정치 행보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임을 알렸던 것이다.
그 발언 이후 야당에서는 징계할 땐 언제고 우리 정부 사람이라는 말로
'족쇄'를 채우냐고 비판을 했다.
야당은 한 번에 알아들은 말을 지지자라는 사람들은 왜 비호라고 받아들였을까?
5. 실질적인 위협을 감정과 바꿨다는 망상
"이재명을 막으려 윤석열을 밀어줬다"고도 한다.
생존의 논리로만 봐도 엉성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 실패 후
이명박에 의해 어떠한 일을 당했는지 누구보다 알고 있는 사람이 문재인이다.
심지어 윤석열은 대통령 임기 중에도
대통령과 대통령의 정책,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를 해댔다.
그 과정에서 청와대를 압수수색하려는 시도도 했다.
그런 윤석열에게 정권을 넘기면 본인이 화를 입게 될 것을
경험적으로도, 본능적으로도 알았을 것이다.
불 보듯 뻔한 위협을 감수하고도 이재명이 싫어서 윤석열을 밀어줬다는 망상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하는 것인가.
이재명이 문재인에게 무엇을 그리 잘못했길래,
자신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윤석열에 대한 분노보다
더 큰 억하심정을 가졌을 거라 생각하는 것인가.
이쯤 되면 '문재인이 아무것도 안 했다'는 말은
'추미애가 보수의 어머니'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다.
추미애에 대한 프레임은 상대가 손발을 묶어두려 만든 말이고,
문재인에 대한 프레임은 그의 지지자를 자처하던 사람들의 확증편향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만 다르다.
당시의 타임라인을 모를 리 없는 사람들이 결과론적 해석에 매몰되어
한 사람의 인생을 난도질하고 있다.
설사 그 과정을 몰라서 그런다고 치자.
그렇다면 더 큰 문제다.
무슨 근거로 그토록 자신감 넘치게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있는 것인가.
숲을 보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신이 본 나무가 그 숲의 전체라고 우기면 안 된다.
그들의 언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심해졌고 이제는 악만 남은 것 같다.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 심연 또한 나를 들여다본다 했던가.
본인들의 패악질이 자신만이 옳다는 확증편향에 빠져
정적을 향해 휘두르던 윤석열의 망나니 칼춤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망상을 근거로 점점 심해지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시즌 2'를
우리는 왜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는가.

samag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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