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교토에서는 시내버스로 시내를 둘러보았다.
신용정보기법의 접근이 있었지만 관광지의 외국인과 일본인 특유의 친절과 조용함이 경계를 늦추게도 하였다.
그러나 닌자들의 습격 처럼 따라다님과 소음발생 행위가 있었다.
특히 버스기사들이 신용정보기법에 적극적이고 관광지 매장의 안내원이나 상점주인들은 재미있어 하였다.
한국인이기에 절대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유명관광지외 어느곳에서든 어떤시간이든 의젓하게 둘러보았다.
그러기 위해 귀보호기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다.
교토에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 전리품으로 가져와 만든 무덤이 있다.
유명한 호국신사 가는 한편 귀퉁이에 있다.
호국신사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위해 지은 신사다. 조선인 귀와 코 무덤 옆에는 주택가이고 무덤옆 이층주택에서 보면 조선인 귀와코 무덤이 내려다 보이며 좀 떨어져 호국신사의 정문이 잘 보일것이다.
호국신사는 들어가지 않았다. 토요토미가 만든 곳이고 그에게 머리를 슥이는 것 같아 싫었고 대신 옆에 있는 교토국립박믈관에서 구경을 잘히였다.
일부러 귀와 코 무덤을 두번 방믄하였다.
한번은 비가 왔고 한번은 날씨가 좋았다.
씁쓸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기에 두번방문한 것 같다
호국신사쪽으로 유명관공지 ( 국립박믈관과 유명사찰등)라 사람이 많이 븍적인다.
조선인 귀코의 무덤 쪽는 동떨어지고 조용하다.그리고
주택가의 늘어선 2층 주택들을 보며 이지역에 사는 일본인들은 이 무덤을 지나며 무슨 생각을 할까..
무덤을 지나쳐 호국신사를 갈텐데 히데요시가 원하는 호극을 위해 호극신사에서 빌까..
쉬어갈때는 교토시내의 성당에 가서 기도를 하였다.
귀막이를 하여도 시끄러울 만큼의 음악이 나왔다.
정말 당장 박차고 나가고 싶었지만 일본인들 앞이라 꾹꾹참으며 의젓하게 버티었다.
하고 싶은 만큼 기도하고 나왔다. 평화로움이 아니라 전쟁터의 포화속에 있다 나온것같았다.
지독하였다. 정말 지독한 폭격과 같았다.
일본 일정 (15 일) 중 절반을 지날때 부터 상당히 달라진다. 일본인들의 생각인 바뀐 것 같았다.
교토식당가와 거리에서 중국인과 일본인들 그리고 한국인들의 신용정보기법의 접근이 있었다하면 별 미친 소리라 할것이다.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다.
서양인들의 존재를 처음 확인하게 되기도 하였다.
버스와 트럭 그리고 사람과 상인들 그 행동은 한국땅에사 해은대와 광안리에서 본 형태를 벗어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일본에서의
생각해보면 교토에서 처음시작한 것은 귀보호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인으로 의젓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조치였다.


댓글 2
일본 에서 신용정보기법의 따라다님과 소음이 닌자의 은밀한 기습처럼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이자들과 일본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자들은 돈은 벌고 싶고 일은 하고 싶어 카멜레온처럼 하나의 몸에서 숙주의 변신처럼 모든일을 해결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