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헌법재판소는 태생적·제도적으로 정치적인 재판 기관이라며 헌재가 재판소원을 통해 특정 재판 결론에 직접 관여한다면 재판이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며 헌재의 재판소원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에 반박했다.
대법원이 18일 “헌법재판소는 태생적·제도적으로 정치적인 재판 기관”이라며 “헌재가 재판소원을 통해 특정 재판의 결론에 직접 관여한다면 재판이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다.
헌재가 지난 13일 “재판소원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공식 입장을 낸 지 닷새 만이다.
대법원은 이날 ‘재판소원에 관한 Q&A 참고 자료’를 배포하고 재판소원 도입은 “우리 헌법 체제와 규정에 맞지 않아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소원은 법원의 재판(판결·결정·명령)에 대해 헌법소원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대법원은 “헌재 심판에는 헌법재판관 임명권자를 비롯한 정치적 다수 세력의 정치적 성향이 간접적으로 반영된다”며 “간통죄, 낙태죄, 과거사 소멸 시효 등 재판관이 바뀌면 동일 쟁점의 결론이 정반대로 바뀌기도 한다”고 했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지명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통령 몫은 국회 동의 없이 독자적으로 임명할 수 있다. 대법원은 “그에 반해 법원의 재판은 정치로부터 고도의 독립성·중립성 보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법원 재판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면서도 “단심으로 불복할 수도 없는 헌재 판단이 3심을 거쳐 고심하는 법원보다 나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고 했다. 현행 3심 체계에서는 잘못된 판단을 상소를 통해 시정하도록 설계하고 있고, 오류가 뒤늦게 발견된 경우엔 재심(再審)을 통해 권리를 구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헌재는 앞서 입장문을 내고 “재판소원이 권력 분립 원칙에 반한다거나 사법권 독립을 침해한다는 주장은 그 헌법상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재판이 헌법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내부적으로는 심급제도, 외부적으로는 헌법재판권한을 가진 헌재를 통해 교정하는 것이 이원적 사법 체제를 택한 우리 헌법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한 바 있다.
대법원은 법안의 졸속 처리도 지적했다. 대법원은 “재판소원법은 22대 국회 들어 한 번도 발의되지 않았다가 작년 5월 1일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에 대한 즉각적 반향으로 발의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재판소원법은 지난 11일 갑자기 법사위 법안소위 의안으로 상정돼 1시간 논의 후에 의결됐고 같은 날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대법원은 “재판소원으로 인해 발생할 소송 절차상 문제에 대해 충분한 논의와 검토 없이 헌재가 급박하게 제시한 의견에 따라 법안이 통과됐다”고 했다.
또 “헌재는 작년 11월 국회에 낸 의견서에서 ‘재판소원 도입에 따라 민사소송법·형사소송법 등 개정이 필요하다’고 하다가 이후 ‘소송법 개정이 필요 없다’고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또 재판소원이 “헌법 해석 권한을 두 기관에 나누어 부여한 우리 헌법 체제에 반한다”고 했다. 현행 헌법은 헌재에 위헌법률심판과 탄핵심판 등을 맡기고 명령·규칙·처분의 위헌 여부는 대법원이 최종 심사하도록 권한을 나누고 있다.
대법원은 “재판소원을 통해 헌법 해석 권력을 집중시키면 헌재가 ‘통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되고, 사법권을 포함한 모든 국가 권력의 통제 권한이 헌법재판소에 집중된다”고 했다.
대법원은 재판소원 도입을 “4심제의 희망 고문이자 소송 지옥”으로 규정했다. 법사위를 통과한 재판소원법에는 재판소원 사유를 ①헌재 결정에 반하는 재판 ②적법 절차 미준수 ③헌법·법률 위반이 명백한 경우 등 세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 사유가 모두 추상적이어서 모든 재산 분쟁에서 ‘헌법상 재산권 침해’를 주장하고 모든 재판 절차에서 ‘적법 절차 위반’을 주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법원은 헌재의 사건 처리 역량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작년 10월 기준 헌재에는 재판관 9명과 헌법연구관 76명이 근무한다. 연간 헌재에 접수되는 사건은 약 2500건인데 평균 처리 기간은 2년에 달한다.
대법원은 연간 상고심 본안 접수 사건(5만여 건)과 상고율(30%대)을 적용해 “재판소원 도입 시 연간 1만5000건 이상이 추가 접수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그러면서 “헌법상 재판관 정원은 9명으로 고정돼 헌법 개정 없이 인원을 늘릴 수 없다”며 “사건이 폭증하면 위헌법률심판 등 헌재 본연의 기능에 심각한 지장이 생기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다만 사건이 폭증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헌재는 “초기에는 접수 건수가 증가할 수 있으나 판례가 축적되면 안정화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대만은 2022년 재판소원을 도입한 뒤 첫해 4371건이 접수됐으나 2024년에는 1137건으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