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가 계속 사람들이 떠나가나 보네요[2]
[광주~서울 그 속도로] 0. 프롤로그
인생을 낭비하기 위해 걸린 햇수
2012년에서 2025년.
IOC가 올림픽을 세 번이나 치를 동안
나는 대리에서 차장으로,
총각에서 열 살 딸 둔 학부형으로 둔갑했고,
흰 머리카락의 밀도는
콜레스테롤 농도 만큼 높아졌다.
나이 들수록 가진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질 줄 알았다.
고등학교 2학년, 봄 소풍 때였다.
나와 친구들, 도합 넷은 청주에서 20km 떨어진
대청댐에 자전거로 갔다.
수방사가 대통령 별장 청남대를 지키던 시절이라,
까까머리 소풍객들은 호수 반대편에서
홍길동이 건널 수 없는 율도국 바라보듯,
흐릿한 시선으로 김밥이나 까먹을 따름이었다.
소풍은 학생들만 설렌 게 아니었다.
오랜만에 탁 트인 호수에서
대낮부터 시작한 음주에 흥겨워진 담임은
출석을 부르자마자 아이들에게
알아서 잘 들어가라고, 일찌감치 종례를 선언했다.
자전거 무리 중 키 작고 까불대는 친구가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아버지가 며칠간 타지로 일 나가서
집이 비었다는 희소식.
세 시쯤 도착한 그의 집은
21단 자전거 페달을 구르느라 애쓴
여덟 개의 발냄새가 꼬롬하게 풍겼다.
입꼬리가 삐죽 올라간 까불이는
장롱 서랍 옷가지를 뒤적이더니,
바스락거리는 검정 비닐봉지에서
비디오테이프를 꺼냈다.
제목은 정확하지 않다.
무슨무슨 부인 시리즈의 속편쯤 되었을 거다.
"야, 이거 어디서 구했냐?"
"다 방법이 있지이.”
그가 털어놓은 비법은 꼬롬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증을 만든 지 얼마 안 되어
그 까불거리는 성정 탓인지,
학생증에 발이 달렸는지,
온 데 간 데 알 길이 없었다.
그는 잔뜩 울상을 짓고 교무실로 갔다.
학생주임에게 꿀밤 한 대 맞는 사이,
혹시 또 잃어버릴지 모르니
빈 학생증 하나 더 낚아챘다.
그는 여분 학생증에 두 해 이른 날짜를 적었다.
그리고 3학년짜리 학생증을
옆동네 비디오 가게에 등록했다.
오늘의 전리품은 그날 이후 무려 1년이 지나,
합법적인 주민등록증 취득 없이
불법적으로 나이를 먹은 그가
성인코너에서 굽은 등을 더욱 꼬무린 채
포획한 것이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극에 달한 4월.
금단의 열매를 갈구했던 아담들은
이전 비디오 대여자들이 얼마나 봤는지,
화질이 꼬롬했던 하이라이트 구간에서
침만 꼴깍 삼키며 다짐했다.
나이 먹기만 해봐라. 아니, 스물만 넘어봐라.
하지만 웬걸.
스물을 두 번이나 돌아 마흔셋이 됐지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걸 헤아리니 별것 없다.
월급날이라 해봐야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갚고,
미리 긁은 신용카드 대금이 인출되면
통장은 모두 동이 난다.
회식을 파하고,
한 잔 더 하고 가자는 동료의 제안에 대답했다.
"집에서 쫓겨나."
어릴 적에는 발끝에 채이던 게 시간이었거늘,
남아돌던 시간마저도
이제는 등기부등본 을구에 잡힌 근저당만큼
초조하다.
그러던 내게 시간이 뚝 떨어졌다.
아내가 아이와 여행 간 사이,
임시공휴일이 포함된 설 연휴와
대체 휴무 하루를 더하니 9일.
누구는 7일 만에 세상도 창조했다덴데,
게다가 마지막 날은 쉬었다니
9일은 그 어떤 일을 하고자 해도 넉넉했다.
나는 수억 광년 밖 올챙이 은하에서,
생명을 창조하기 딱 맞은 행성을 발견한
조물주라도 된 양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어릴 적 무릎 연골을 할부로 당겨쓴 바람에,
정형외과 의사는 70대인 내 관절로는
함부로 뛰지 말라 했다.
그래서 걸었다.
뛰지 말랬지 걷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까.
대구에서 서울은 2006년,
2012년에는 속초부터 춘천까지 걸었다.
컴퍼스로 서울 중심으로 원을 그리니
광주에 닿았다.
국도로 330km. 하루 40km씩,
마지막 날 50km 걸으면 8일이 마침 맞았다.
여행 전날, 짐을 차곡차곡 배낭에 넣으니 18kg.
그보다 묵직한 겁이 갈비뼈 사이를 파고들었다.
덤프에 치인 고라니 꼴이라도 될까 봐.
1월 25일 오전 6시.
기상캐스터의 예측대로 광주광역시의 맨 북쪽,
북구 두암동의 이름만 호텔인 뉴욕호텔 밖은
코털이 얼어붙을 만큼 싸늘했다.
탁탁,
손에 쥔 등산스틱이 새벽을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불혹을 넘긴 소년은 귀에 걸린 것이
KF94 마스크인지 입꼬리인지 모를 만큼
입을 벌리고 웃어 젖혔다.
마스크 틈으로 새어 나온 시속 5km의 수증기가
검은 하늘로 뭉개지자,
증발한 미소의 결정들이 가로등 불빛에 흩날렸다.
소년은 소복이 쌓인 웃음 무더기를 밟았다.
뽀드득, 간지러운 폭소가
아스팔트에 납작이 각인되었다.
삼천 년 뒤, 고고학자가 뜬 탁본에는
이 찰나의 환희가 도드라지리라.
소년의 흰자위가 문득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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