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람들은 현대인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대식가였습니다.
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가장
경악했던 부분도 바로 이 압도적인
식사량이었죠.
당시 성인 남성의 한 끼 식사량은 약 7合
(약 1kg 내외)로, 현대 공깃밥의 3~4배.
"조선인들은 보통 한 사람이 3~4인분을 먹으며,
배가 팽팽하게 나올 정도로 먹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 영국 여행가 -
(엄청난 양의 고봉밥에 난감해 하는 선교사들)
조선시대 손님 대접의 예의
손님에게 밥을 산더미처럼 쌓아주는 '고봉밥'은
풍요와 정을 상징하는 최고의 예우였습니다.
조선시대 참외는 후식이 아닌 주식이었다?
"조선인은 앉은 자리에서 참외 대여섯 개를
해치우는 건 일도 아니다"
"한 사람이 참외 10~15개를 먹는 것도 보았다"
"여름이면 길거리에 참외 껍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 선교사 허버트-
껍질을 깎지 않고 씨까지 통째로 먹는 모습은
서양인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참외가 수분 보충과 허기를 달래는
식사 대용이었기 때문입니다.
밥 대신 참외만 먹고 농사일을 해야 했던
조선시대 사람들 ㅜㅜ


댓글 21
저 당시 먹던 말하는 참외는 현재 우리가 먹는 참외가 아니라 껍질이 초록색인 재래종입니다. 당도도 별로 없어서 무를 씹는 맛이었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참외는 50년대 일본에서 들어온 개량종인 은천참외종 입니다. 저 기록은 프랑스 선교사 샤를 달레의 기록이며, 저런 과일 조차 당시 매일 먹을 수 있는게 아니고 식사 대용으로써 많이 먹을 수 있을때 한번에 많이 먹어두는 조선인들의 식습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조선시대 그렇게 빈곤한건 아니었슴 오히려 착취당하던 일제시대 보릿고개가 살벌헀죠
밥에 간장 김치만 먹으면 저정도 쳐무야지..
저렇게 먹고도 건강한가 ㅎㄷㄷ
근데 저렇게 먹을 식량이 있었나? 돈많은 대식가 우연찮게 몇명보게되어 일반화한거아냐?
조선시대 그렇게 빈곤한건 아니었슴 오히려 착취당하던 일제시대 보릿고개가 살벌헀죠
탄수화물로 노동에 필요한 열량을 감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랬다는 군요 (단백질,지방 섭취가 적어서...)
외할무니가 매번 고봉밥으로 주셨었는데 ㅋㅋ
예전 고향 시골에 밥공기가 국사발만하였음..정말 다들 많이 드셨네요~ 농서일이 그땐 다 직접 노동이라 엄청드신 듯요.
그렇게 쳐먹어서 계집질 성교에 미쳐서 오래 못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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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는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하던데
저도 참외 사면 그냥 씻어 껍질채로 ㅎㅎ 예전에 주식이 밥이지만 지금은 주식보다 다른 게 먹을 게 많으니..
저 당시 먹던 말하는 참외는 현재 우리가 먹는 참외가 아니라 껍질이 초록색인 재래종입니다. 당도도 별로 없어서 무를 씹는 맛이었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참외는 50년대 일본에서 들어온 개량종인 은천참외종 입니다. 저 기록은 프랑스 선교사 샤를 달레의 기록이며, 저런 과일 조차 당시 매일 먹을 수 있는게 아니고 식사 대용으로써 많이 먹을 수 있을때 한번에 많이 먹어두는 조선인들의 식습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전 아버지 밥공기 보면 지금 공기밥 크기의 2.5배였음
보릿고개가 괜히 왔던게 아닌듯..
시골에서 일 한번 해보면 대충 공감되는데 농기계가 있는것도 아니고 오로지 두손두발로 다 해야되는데 저렇게 안먹고 어찌 함
농사일하면 저렇게 먹어야 한다더라...
뭐 참외는 냇가에서 주워오나? 노지 재배해서 참외가 나는 기간이 얼마나 된다고 주식으로 먹어? 곡식이 귀하니 철에 맞게 자연에서 나는걸로 배를 채워야 하니 저래 보일 수 밖에,, 송기나 쑥으로 떡을 쪄 봄을 버틴것도 곡식이 부족해서 이지 쑥이나 소나무가 넘쳐나서 그랬던 것은 아니지,,
단백질, 지방 섭취 부족하고 육체 노동을 하니 밥으로 필요 열량을 채워야 돼서 저리 먹어도 쉽게 배가 꺼졌을듯
현재는 참외를 밥으로 먹다가는 살림 거덜납니다 비싸서
농사일이 워낙 힘드니깐 뭐..
어렸을땐 참외, 사과, 감 뭐 이런거 껍질채 먹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