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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없애고 싶어하는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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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을 보면 왜국 사신만 신발을 

신지 않고 있다

 

 

한때 임나일본부설이니 남선경영이니 

백마강전투를 중화제국과 일본제국의 격돌이니 

하며 과거사 망상에 한참 빠져있던 일본에게 

'현실은 시궁창'임을 깨닫게 해 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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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국 사신의 모습을 본 일본인들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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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실망 (이게 우리 조상이라고?)

 

당시 일본은 자신들이 고도로 발달한 

국가였다고 믿고 싶어 하지만, 동시대의 

객관적인 기록인 '양직공도'에 나타난 사신의 

모습은 기대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일본 

사학계가 큰 실망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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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신라, 고구려 사신들은 화려하고 정돈된 

관복과 신발을 갖춰 입은 반면, 

오른쪽의 왜국 사신은 확연히 초라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 극단적인 대조를 이룹니다.

 

 

 

 

..

근데 저 교수가 식민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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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양나라 사람들은 왜국 사신의 실제 모습을 

관찰해 그린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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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세기에 쓰인 삼국지 위서 왜인전(동이전)에 

기록된 텍스트를 참고하여 그림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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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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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이 주장했던 

"낙랑군은 평양에 있었다"는 설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점이 비판의 핵심.

 

재야사학계는 이를 '한반도 북부가 중국의 

식민지였다'는 논리를 정당화하는 식민사학의 

잔재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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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연구소 중심의 주류 사학계

(강단 사학)가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폐쇄적인 구조 속에서 일제가 심어놓은 

반도 사관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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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교수 등 주류 사학계의 반론

 평양 일대에서 발굴된 수천 기의 낙랑 고분과 '낙랑'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유물(봉니, 목간 등)은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 증거라는 입장입니다.

단순히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역사적 

 

사실(유물/유적)을 외면하거나 지도를 임의로 

수정하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역사 파시즘'이라고 반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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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 이 사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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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검둥개

그나마 저긴 옷이라도 입고 있네 홀딱벗고 거적데기로 거시기만 가린 그림은 안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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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산불여섯

역사를 통틀어,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를 과거 로 돌아가 신발로 까는 교수 수준을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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