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터 광팬[1]
조선시대 문패는 양반 그것도 세가에만 있었고 중앙에 대문짝만하게 달았다.
1980년 전후로 보면 서울 무작정 상경과 서울 인구가 급속히 늘고
전국 가구수 대비 주택은 1:1.2 이임에도 서울 자가 거주자는 40%가 안되었다.
" 응답하라 1988" 드라마에 쌍문동 자가 문패에 한호하는 장면 기억하나?
서울 문패 자체가 성공했다는 증빙 자체였다.
쌍문동이 비록 촌구석이었지만 서울 브랜드로 그랬던 시절이다.
나 어린시절 일요일 쌍문동 논바닥에 만든 스케이트장 다녔다.
1960년대 부터 청계천에서 상양동까지 판자촌이 생기던 시절이다.
서울대 있던 대학로며 종암동 고려대도 하천이 흐르던 시절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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